<새영화>`DMZ, 비무장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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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DMZ, 비무장지대"
  • 윤종원
  • 승인 2004.11.1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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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글로 쓰면 소설 몇 권은 된다"라고. 하지만 실제 그것을 소설로 옮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출간된 소설 `그 남자네 집"의 작가 박완서는 행복하다. 50여 년 전의 애틋한 첫사랑을 복원한 그의 자전적 소설은 본인과 독자들을 모두 즐겁게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사람 역시 행복하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DMZ, 비무장지대"는 이규형 감독의 실제 군대 생활을 녹여낸 작품이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군대 영화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너무나 `찬란했던" 자신의 군 생활을 복기했다. "DMZ, 비무장지대"는 이 감독이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남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것이다.

지나간 시간과 복원된 기억은 어느 정도의 과장과 왜곡을 수반한다. 그러나 영화는 확실히 훌륭한 매체다. 이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 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칠함으로써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DMZ, 비무장지대"의 가장 큰 미덕은 여기에 있다. 감독의 이러한 균형 감각은 자칫 황당하게 치달을 수 있었던 영화를 비교적 땅에 발 붙이게 했다.

영화 도입부에는 "그들은 전방고지에 야자수를 심고 그곳을 호텔 코코넛이라 불렀다"는 자막이 등장한다. 때는 1979년.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이요, 남북한 간의 냉기가 한반도를 꽁꽁 얼리던 시절에 이 무슨 해괴한 소리. 그러나 올해 47세인 이규형 감독은 강조했다. "제대 1년 전 진짜로 내무반을 호텔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려고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절대 허구가 아니다."

북한에서는 호시탐탐 땅굴을 파고 내려올 궁리를 하지만, 철책선 부근 남한의 병사들은 강팍한 군생활 속에서도 나름의 희한한 "놀이"를 즐긴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 사는 동네는 비슷한 모양새. 좋은 자대에 배치받기 위해 훈련소에서 여자 팬티를 구해 입고, 건전한 영화를 감상해야 할 정훈 시간에 에로 장면들을 짜집기 한 영화를 감상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코미디쇼가 아니라 바로 현실 그 자체였다는 것.

물론 시대를 상징하는 구타는 코믹함과 등을 맞대고 끊어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숨 쉴 구멍은 있었다는 시선이다.

1980년 대 일련의 청춘 영화로 `대박"을 친 이규형 감독은 10여 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DMZ, 비무장지대"에서 이제는 한참 지나쳐온 청춘을 물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또 아무리 감각을 유지한다 해도 25년 전의 일이다. 화자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요즘 관객의 눈높이에 촌스럽게 다가온다.

영화는 내무반 생활과 함께 섬찟하고 비장했던 남북한의 대치를 다른 한?으로 끌고 나갔다. 덕분에 남성미 진한 군인의 모습과 전투가 적절히 펼쳐진다. 특히 안개 속 전투신은 이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바꿔버릴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세련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

"군대야말로 오딧세이의 모험이 아니냐"는 대사가 말하듯, 이 영화는 군대마저 야자수 그늘진 호텔처럼 생각할 수 있는, 패기 어린 청춘의 단상을 그렸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의 바람과는 달리 남북의 정서적 공감을 끌어내는데는 힘이 달린다. 하고픈 이야기, 보여주고픈 에피소드가 너무 많았다. 지난 10년의 공백이 너무 컸던 탓일까.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담아내는데는 여유가 부족했다. 진심어린 백서일지는 몰라도, 여운을 느끼기에는 허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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