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환자·의사·약사에게 실손보험 청구방식 강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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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환자·의사·약사에게 실손보험 청구방식 강제하나?”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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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협·의협·치협·약사회 의·약 4단체 및 의료 IT업체들, 실손보험업법 문제점 지적
청구방식 환자·의사의 선택·자율권 보장해야…‘위헌소송 준비 병행할 것’ 경고
서인석 병협 보험이사, “공적 전송대행기관 필요 없어…자율적 참여 보장해야”
의료 IT업체들, “이미 형성된 환경만으로 충분…막대한 비용 수반할 이유 업어”
(사진 왼쪽부터)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이광희 대한약사회 보험이사,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 김수진 대한치과의사협회 보험이사. ⓒ병원신문.
(사진 왼쪽부터)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이광희 대한약사회 보험이사,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 김수진 대한치과의사협회 보험이사. ⓒ병원신문.

의료계와 의료 IT업체들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의 숨겨진 의도를 의심했다.

이미 환자와 의·약사를 위한 편리한 서류전송 환경이 시장에 충분히 형성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을 통해 공적 전송대행기관으로 청구방식을 일원화해 강제화하려는 시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것이다.

즉,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요양기관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현행법을 손봐야 한다는 게 의료계와 의료 IT업체들의 요구사항이다.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의·약 4개 단체와 의료 IT업체들은 11월 17일 의협회관에서 ‘실손보험업법 전송시스템 구축현황과 효율적인 대안’을 주제로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는 서인석 병협 보험이사,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 김수진 치협 보험이사, 이광희 약사회 보험이사, 의료 IT업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전산화해 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전달하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 보험개발원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의사와 환자의 선택권·자율권을 무시한 채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으로 설정하면 그간 의·약계와 의료 IT업체가 오랜 기간 노력을 통해 형성한 청구 환경을 무의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 및 가입 거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우려는 서인석 보험이사가 발표한 ‘보험업법 개정 경과와 향후 과제’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서인석 보험이사에 따르면 실손보험업법 개정안은 환자의 진료비 내역을 비롯해 민감한 의료정보가 담긴 전자적 프로파일링이 보험신용정보시스템(ICIS)에 누적·관리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환자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는 차치하고 전자화된 개인의료정보가 영리 기업인 보험회사에 유리한 정보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고액보험금 지급 및 보험가입 거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서인석 이사는 “실질적으로 보험 리스크가 높은 환자를 거절하는 사례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전자적 프로파일링 개인정보를 전자적으로 관리할 때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통해 책임 범위와 영향력 등을 고지하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병원신문.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병원신문.

서 이사는 “예를 들어 위염이나 위궤양으로 일주일 정도 치료받은 사람이 훗날 실손보험을 갱신할 때 보험회사가 위암에 대해서 부담보를 주장할 수 있고, 환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동의하는 현상이 흔해질 것”이라며 “결국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큰 환자를 배제하는 보험상품이 개발되고 기저질환이 많은 환자는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다른 보험상품 가입을 거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실손보험업법을 갈망하는 보험회사들은 환자들의 청구 편의를 그 이유로 들고 있는데, 소액청구가 늘어날 경우 손해율이 130%에 달한다고 읍소하는 보험회사들이 무슨 수로 보험금을 지급할 것인지 반문한 서 이사다.

다시 말해 실손보험업법의 숨겨진 이면에는 보험료 인상 및 보험회사가 유리한 새로운 상품으로의 갈아타기 유도를 원활히 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지적인 것.

아울러 공적 전송대행기관을 설치해 의사와 환자의 의무 및 선택을 강요하려는 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게 서 이사의 비판이다.

서 이사는 “이미 지금도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전자차트 기술지원에 따라 원하는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환경이 형성돼 있다”며 “요양기관이나 환자가 선택해 보험회사로 직접 전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서류전송의 편의성을 돕는 요양기관에 인센티브 등을 부여해 자율적 확대를 유도하는 게 차라리 합리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정근 상근부회장도 금융위가 실손보험업법 논의과정에서 ‘종이 서류로 하던 절차를 전자적으로 하는 것 외에는 기존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등의 발언만 하고 ICIS 등에 누적된 정보로 인한 피해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국민을 기만한 행태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상근부회장은 “의료법 제21조 제2항에는 의료인과 의료기관 이외의 의료정보 사본교부 및 열람 가능 범위를 개별 법률을 촘촘히 나열하고 있다”며 “금융위는 기존 의료법에서 정한 취지를 정면으로 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이번 법 개정으로 인해 마치 요양기관이 실손보험금 청구를 대신해 주는 듯한 오해를 살만한 행동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금융위에 불쾌감을 드러낸 의·약 4개 단체다.

실제로 금융위는 최근 ‘실손보험금, 앞으로 병원과 약국에서 바로 청구하세요!’라는 홍보를 한 바 있으며, 언론에서도 ‘진료와 조제를 받고 요양기관에 요청만 하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는 등의 기사가 노출돼 현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수진 보험이사는 “개정안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보험금 청구와 관련된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으로 전송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인데 금융위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요양기관이 대신 청구해 주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IT업체들, 이미 핀테크 업체들이 개발·보급하고 있는데?

중계기관 선정 ‘답정너’가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강한 의문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불만과 의심은 의·약계에서 멈추지 않았다.

의료 IT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핀테크 업체들이 요양기관과 함께 협력해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보험인 실손보험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의료IT산업협의회 회장)는 득보다 실이 많은 보험업법 개정안의 취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민간을 통해 간편 청구가 이뤄지고 있는 디지털 생태계가 현재도 구축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 대표는 “앱으로 간편 청구가 가능하고 논스톱 전송 절차로 서류가 보험회사에 직접 전달돼 민감한 의료정보 유출 문제가 없어 실손보험 청구가 많은 의료기관의 자율적으로 참여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며 “청구책임을 요양기관에 전가할 게 아니라 보험회사의 청구 프로세스 표준화 등 효율적인 운영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고, 이에 더해 청구 주체인 환자가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주현 유비케어 전략기획실장도 “그동안 핀테크 업체들 스스로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해 서비스 역량을 높여왔고 그 결과 시스템 표준화 노하우가 쌓였다”며 “이를 새로 구축한다면 오히려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점이 생길 수 있으니 청구방식을 일원화·강제화하는 것보다는 병·의원, 약국, 환자들이 직접 전송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민간 경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헌 지앤넷 부회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의료계 생태계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제와서 정부가 직접 나서 청구방식을 강제화하는 것은 국민이 아닌 보험회사를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며 “민간보험인 실손보험에 왜 공공성을 지닌 중계기관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그동안 실손보험 청구 서비스를 제공한 핀테크 업체 역량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누가 더 잘할 수 있는지 비교하고 중계기관을 결정해야지, 마치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식으로 중계기관 선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이 아닌 보험회사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노주현 유비케어 전략기획실장, 김동헌 지앤넷 부회장, 김준현 레몬헬스케어 부사장.
(사진 왼쪽부터)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노주현 유비케어 전략기획실장, 김동헌 지앤넷 부회장, 김준현 레몬헬스케어 부사장.

김준현 레몬헬스케어 부사장은 금융위의 우려와 달리 정보유출 등의 문제는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피력했다.

게다가 의료계 위주의 행정데이터는 금융보안권의 지침에 따라 설계됐는데 이를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금융보안원 지침 자체가 위험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는 게 김준현 부사장의 지적이다.

김 부사장은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회원 수도 100만 명에 이를 뿐만 아니라 타사의 앱들도 레몬헬스케어 중개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며 “이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하기까지 4년이 걸렸는데, 당장 내년에 개정안을 시행하겠다는 금융위의 계획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되려 묻고 싶다”고 전했다.

김종민 보험이사도 “보험업법 개정 없이도 요양기관과 핀테크 업체가 협업한 청구서류 전송 서비스는 기술적으로 90% 이상의 요양기관에 지원이 가능하다”며 “이는 원하는 기관들이, 원하는 환자들의 요구와 동의절차를 통해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없이 필요한 정보 범위 내에서 전송이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언급했다.

김 이사는 이어 “국회 논의과정을 거친 개정안에 민간 핀테크 업체 또는 전송대행기관을 통한 전송방식이 모두 가능하도록 반영된 점을 고려해 금융위는 요양기관의 전송대행기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약 4개 단체는 요양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민간보험 청구 강제화’에 연대해 공동 대등하고 국회 통과 과정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공유하고 개선할 방침이다.

이들 단체는 “의료정보 전자적 취득·활용, 요양기관의 자율권 및 환자의 선택권 침해, 다른 법과의 상충 문제 등을 두고 위헌소송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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