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수가 개선 ‘함흥차사’…산부인과 의사들만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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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수가 개선 ‘함흥차사’…산부인과 의사들만 ‘답답’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10.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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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의사회, 2월 초 정부 발표 이후 대책 없는 현 상황에 경고 날려
분만실 유지 위한 신설 수가 필요…사고 보상금 상향도 시급히 지원해야
임산부 초음파 급여기준 제한 없애야…골반수지검사 보험 신설 등 기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임원진. ⓒ병원신문.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임원진. ⓒ병원신문.

정부가 올해 2월 초 분만 수가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이후 약 8개월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올해 7월 역대 최저 수준인 0.7명을 기록하고, 의료분쟁의 천문학적인 배상이 꾸준히 증가해 최근 12억 판결까지 내려져 충격을 주고 있는 등 산부인과는 저출산, 저수가, 의료분쟁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데 그나마 기대한 분만 수가 개선마저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재연)는 10월 15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제50차 추계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호소했다.

이날 산부인과의사회는 올해 2월 초 분만 수가 개선안이 발표된 이후 10월 중순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구체적인 대책이 전무한 상황을 우려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종식된 마당에 감염병 정책 수가, 안전 정책 수가, 지역 수가 등 사탕발림으로 허송세월하는 동안 산부인과 의사들은 살길을 찾기 위해 분만 현장을 계속 떠나고 있는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현장의 의사들이 더 이상 헛된 희망만 품도록 꼼수 부리지 말고 분만 수가에 12억 배상 판결을 반영한 위험도 상대 가치를 반영해다라는 게 산부인과의사회의 요구다.

산부인과의사회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많은 전문가는 매년 약 4%의 출생아 수 감소를 예측하고 있다.

2025년에는 21만7,433명, 2030년에는 17만7,000여 명의 출생아 수가 예측되는 상황인데, 이러한 출생아 수 감소는 분만 병원당 출생아 수 감소로 이어져 정부의 분만 수가 300% 인상안 효과만으로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산부인과의사회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이러한 300% 인상안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 산부인과 의사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게 문제.

실제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학교실 황종윤·안태규 교수는 모자보건학회지 제27권 제2호에 적정 분만 수가를 분석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 살펴본 분만 형태는 가장 단순한 ‘정상질식분만 단태아 초산’과 ‘제왕절개만출술 단태아 초회’다.

연구결과 질식분만의 보험 기준 수가는 2003년 11만5,880원에서 2022년 병원급은 58만3,790원으로 5.03배, 의원급은 67만1,660원으로 5.79배 각각 증가했다.

보험 기준 수가에 분만 병원 종별 가산을 추가하면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분만 병원에 부여한 분만 보험 급여비를 산출할 수 있는데, 그 결과 상급종합병원의 분만 진료비는 75만8,927원이었고 의원급은 77만2,409원으로 집계됐다.

분만실은 임산부 응급실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분만과 상관없이 24시간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24시간 분만실 운영을 위해 근무해야 하는 최소 인력은 산부인과 전문의 2인, 간호사 7인, 지원인력 1인이다.

이들의 최소 1인당 인건비는 연간 산부인과 전문의 2억4,000만 원, 간호사 5,000만 원, 지원인력 3,600만 원 등으로 한해 산부인과 전문의 2인, 간호사 7인, 지원인력 1인에게 총 8억6,600만 원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재연 회장은 “분만 병원에서 연간 8.66억 원의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상된 분만 수가 기준으로 특별시 및 광역시에서는 연간 분만이 700건 이뤄져야 한다”며 “이 같은 분만 건수는 출생아 수가 감소하는 국내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한 수치로, 분만실 유지를 위한 신설 수가 및 체계적인 분만 인프라 지원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어 “최소한 분만비가 400%까지 인상돼 200만 원 이상은 돼야 월 10건 만으로도 분만실을 유지할 수 있다”며 “올해 안에 가시적인 정부 정책이 없다면 분만 현장의 의사들과 함께 전국적인 산부인과 분만실 폐쇄를 포함한 중대한 결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산부 초음파 급여기준 제한 및 사고 보상금 상향 시급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병원신문.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병원신문.

임산부가 의료비 부담으로 태아의 건강을 제때 확인하지 못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임산부 산전 초음파 검사 지원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주장이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신생아 3명 중 1명이 유산됐는데, 임산부 산전 초음파 검사는 특정 임신 주차에 따라 1~2회, 태아의 출산 전까지 총 7회만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임산부 초음파 검사의 급여기준을 살펴보면 임신 13주 이하의 제1삼분기 임산부는 일반초음파 검사 2회와 정밀 초음파 검사 1회만, 임신 14주부터 분만일까지의 제2·3삼분기에는 일반초음파 검사 3회와 정밀초음파 검사 1회만 지원된다.

즉, 총 7회 인정 횟수를 초과하거나 7회 내 검사라도 인정 주수에 맞지 않는 검사에 대해서는 산모가 모든 비용 부담을 안게 되는 형국인 것이다.

실제 최근 5년간 분만 전 280일부터 분만일까지의 초음파 검사 청구가 있는 산모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초음파 검사를 받은 전체 산모 10명 중 8명에 달하는 19만1,291명(78.13%)이 7회 이상 검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한 명의 임산부가 평균적으로 받은 초음파 검사 횟수는 건보공단에서 판단한 기준인 7회보다 1.5배 많은 10.5회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건보공단의 산전 초음파 지원사업이 산모의 의료비 부담에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임산부 초음파 급여기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분만사고 소송에서 손해배상 금액이 과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점도 산부인과를 짓누르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김 회장은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 제도를 현실적으로 인상하고 유과실 판결 금액이라고 하더라도 의료행위는 다른 사건들과 다르게 산모를 도와주려다가 발생한 공공의료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며 “판결 금액의 80% 이상을 국가가 책임지는 획기적인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산부인과 전공의는 사라지고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만 기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골반수지검사 및 암검사 채취료 보험 신설 등 기대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와 통합 논의 본격화 예고

이날 산부인과의사회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의사협회 등과 논의 중인 골반수지검사 및 암검사 채취료의 보험 신설 등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기철 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은 “산부인과는 기본 수가 수준이 매우 중요한데, 보험 항목 중에서 골반수지검사가 신설될 수 있도록 학회 및 의협 등과 논의하고 있고 암검사 채취료 포함도 다른 진료과의 저항이 줄어들어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다”며 “결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최근 명칭을 변경한 직선제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회장 김재유)와 통합을 위한 논의에 본격적인 발걸음을 떼겠다는 의지를 보인 산부인과의사회다.

김재연 회장은 “예전처럼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화 적대적인 감정은 없다”며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통합에 대한 계획을 시도할 계획이고, 올해 안에 관련 TF를 구성해 구체화시키겠다”고 예고했다.

김 회장은 이어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에 유능하고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많으니 두 의사회가 통합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영향력 있는 의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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