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인프라 붕괴, 의료소송 해법 없인 '못 막아'
상태바
분만 인프라 붕괴, 의료소송 해법 없인 '못 막아'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3.09.15 2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만 관련 무과실 보상 등 국가 차원의 해결책 마련해야
대한산부인과학회, “분만 인프라 완전 붕괴 전에 국가 책임 필요”
9월 15일 국회 박물관 2층에서 열린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의 현실 국회 토론회에 참석자들ⓒ병원신문
9월 15일 국회 박물관 2층에서 열린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의 현실 국회 토론회에 참석자들ⓒ병원신문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 박중신)를 비롯한 전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붕괴 위기에 직면한 분만 인프라 회복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즉, 분만 관련 소송에 대한 부담이 분만 인프라 붕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분만과 관련해선 국가가 책임지는 무과실 보상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9월 15일 오후 2시 국회 박물관 2층에서는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대한산부인과학회 주관으로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소송의 현실’을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오늘 토론회는 최근 사법부가 신생아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 원이라는 거액의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 배경이 됐다”면서 “사실 그동안 민사소송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불합리한 면이 있어도 견뎌 왔으나 최근 판결을 보면 일개 산부인과 의사가 개인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이런 판결이 계속될 경우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분만을 담당할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소아과 의사가 없어 의사를 찾아 소위 뺑뺑이를 돈다는 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며 “지금 우리가 이 방향의 줄기를 돌려놓지 못하면 앞으로는 산부인과 분만병원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날이 올까 봐 너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학회가 원하는 방향은 설사 안 좋은 결과가 생겼더라도 그 책임을 일개 개인에게 부담시키기보다 국가에서 감당해 주기를 바란다”며 “현행 분만 관련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액수가 너무 적어 그 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에서 보상 액수를 상향하고 부담해야 만이 앞으로 저출산 시대에 대한민국 임산부들이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 15일 국회 박물관 2층에서 열린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소의 현실' 토론회 모습ⓒ병원신문
9월 15일 국회 박물관 2층에서 열린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소의 현실' 토론회 모습ⓒ병원신문

이어진 지정 토의에서도 분만 관련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 줄 것을 촉구했다.

성원준 경북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산과 의료소송의 증례 리뷰’를 통해 의료진의 분만 관련 소송에 대한 부담은 분만 인프라 붕괴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라며 분만 관련 소송의 증가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산모 및 향후 출산을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10억 이상의 고액 배상 판결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저는 사실 제자들에게 산부인과를 권유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말려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한탄했다.

그는 “항상 위험을 안고 있는 출산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서는 분만 관련 불가항력적 사고에 관한 국가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로 산과의사와 산모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고 호소했다.

특히 국가 차원의 무과실 보상 정책을 제안했다. 임신은 질환이 아닌 본인의 선택이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으로 타 질환의 의료사고를 보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성 교수는 “이 무과실이라는 게 정말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에는 국가에서 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무과실 보상을 해야 만이 소모적인 의료소송은 줄이고 산모는 분만 관련 사고에서 벗어나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의사들은 어느 정도 소송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최선의 진료와 안정적인 산과 의료진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일본의 무과실 보상제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산모들이 분만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공적 보험에 가입하고 퇴원시 분만료에 일정 비용의 보험료를 추가해 납부한다. 출산과정에서 발생한 뇌성마비는 과실 유무에 상관없이 공적 보험에서 4억 원을 지급하고 있다.

성 교수는 “나중에 아기가 생후 1개월, 1년 후에라도 뇌성마비로 진단되면 보상위원회에서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데 분만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경우 보상을 해준다”며 “의사의 과실 여부는 따지지 않고 보상금을 지급해 주기 때문에 소송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도 ‘의료분쟁 조정 중재법’이 있지만 천문학적인 배상 비용을 고려할 경우 3,000만 원은 어림도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연간 분만 건수가 25만 건인데 수가를 10만 원이라도 인상해서 보험 재원으로 활용하면 250억 원이라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저출산 예산의 일부분만 투입해도 무과실 보상을 위한 기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뇌성마비가 발생하면 장애인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장애인 또는 치매 노인에 대해 국가가 간병비 지원을 하는 정책을 하고 있다”며 “사회 연대로서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는 건 지극히 타당하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재판이 3년에서 7년 이상 걸리는 동안 환자 산모의 피해는 단순히 1차 피해를 넘어 그 주변 가정이 입는 2차 피해까지 어마어마하다며 이를 빠르고 신속한 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사회보장 정책인데 이미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 예산이 2024년도 15조원으로 이 예산에서 0.6%만 사용해도 무과실 보상에 대한 기금은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는다”며 “여러 가지 정책적 효과를 단박에 낼 수 있는 3~4가지 이상의 정책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고 그 방법의 시초는 ‘의료분쟁 조정법’을 현실화해 대폭 보상 금액을 늘리는 것”이라고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 8월에 이어 다시 한번 성명서를 통해 국가 차원의 제도적 보완과 아울러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결을 호소했다.

산부인과학회는 뇌성마비는 뇌의 비정상적인 발달이나 성장하는 뇌의 손상 등으로 발생할 수 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태아의 이상을 발견한 즉시 의료인이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거액의 배상 책임을 묻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이는 분만 현장의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위축시키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저출산 시대의 ‘필수의료 살리기’가 공허한 외침이 돼 버렸다는 것.

특히 재판부의 판결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진료실과 분만실을 오가며 건강한 생명의 탄생을 위해 헌신해온 산부인과 의사들을 개탄하게 만들고 있다며 결국 분만이라는 의료행위를 중단하게 해 분만 인프라 붕괴라는 재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산부인과학회는 모든 산모들이 건강한 아기를 낳을 것을 기대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로 선의의 의료행위 후에 발생한 일부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담당 의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눠 감당해야 할 못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