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폐색 수술 지연 의사 실형 판결에 의료계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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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폐색 수술 지연 의사 실형 판결에 의료계 ‘동요’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9.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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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필수의료 붕괴 조장하고 방어 진료 성행할 것”
외과의사회, “이마에 범죄자라는 주홍글씨 낙인 처참”
대개협, “파멸로 치닫는 대한민국 의료의 한 단면”

의료계가 장폐색 환자의 수술 지연을 이유로 최근 외과 의사에게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것과 관련해 동요하고 있다.

필수의료 붕괴와 방어 진료 성행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대법원은 최근 소장폐색 환자의 수술 지연에 따른 악 결과의 원인이 외과 의사에게 있다며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 금고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최종확정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이 된 외과 전문의는 지난 2017년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를 진찰한 후 장폐색이 의심되지만,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했다.

이어 그는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고 의학적 판단을 내렸으나 7일 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는 바람에 응급수술을 시행해 소장을 절제했고 그 결과 환자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당시 해당 환자의 상태를 볼 때 즉시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이었으며 주의의무 위반으로 수술이 지연됐다”고 언급했다.

즉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괴사 등이 발생한 것은 의사의 과실 때문이라고 판단해 금고형을 선고한 것.

나아가 대법원은 실형까지 확정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9월 4일 심각한 우려와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의협은 “환자의 치료 방법 선택에 대한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이 사법적으로 부정되고 추후 환자의 악화됐다는 이유로 다시 개별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의사는 의식적으로 보다 강화된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결국 미래 의료현장에서는 매사 법적 단죄를 상정해 환자에게 최선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치료 방법을 선택·권유하는 소신 진료 의사들을 만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이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협과 의료 수준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부언했다.

특히 현재도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전공의 정원 모집이 지속해서 실패해 필수의료 분야의 수술이나 진료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인데,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악 결과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판결이 반복된다면 의료진의 방어 진료 일반화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가속화 돼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일갈한 의협이다.

대한외과의사회(회장 이세라)도 성명을 통해 ‘범죄자’라는 ‘주홍글씨’의 처참함에 치를 떨었다.

어떠한 이유로든 배를 여는 순간 장기들에는 유착이 발생하게 되고, 이전에 수술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장 꼬임이 발생할 수 있는데, 장 꼬임을 이유로 배를 열어 수술을 하고 나면 괴사돼 썩은 장을 잘라낼 수 있을 뿐 수술을 받았다고 평생 동안 다시 장 꼬임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게 외과의사회의 설명이다.

의사회는 “외과 의사는 제한된 환경에서 환자의 편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이 최선일 뿐,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며 “그 환자가 다시 또 장 꼬임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제 그 환자는 어떤 외과 의사에 수술을 받을 것인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을 받은 외과 의사는 범죄자라는 주홍글씨를 낙인으로 이마에 새기고 평생 똑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데, 과연 그 외과 의사는 두려움 없이 1%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다시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도 의사회가 지적한 심각한 문제다.

의사회는 “몇 없는 수술하는 외과 의사들마저 범죄자로 만들어 강제로 수술방 밖으로 끄집어내 형사 처벌의 감옥에 넣어 버리고 있으니 대한민국 의료계의 파행은 불가피하다”며 “이번 판결로 인해 마음 놓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의사는 사라졌고, 더이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동석)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대개협은 “완벽한 의사는 없고 완벽한 의술도 없는데, 의술이 범죄 취급을 받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파멸로 치닫는 대한민국 의료의 한 단면일 뿐이다”고 일갈했다.

대개협은 이어 “의사의 판단 기준이 오로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되도록 사회적 동의와 법적인 지지가 없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환자에게 귀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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