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에 뇌파계까지…연이은 ‘폭탄’에 의료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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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에 뇌파계까지…연이은 ‘폭탄’에 의료계 ‘100℃’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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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뇌파계 사용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취소 소송 복지부 상고 기각
‘특별 임상경력 요구되지 않고 위해도 높지 않다’는 원심판결 확정 판단
의협 등, “국민 생명과 안전 포기한 판결에 경악과 분노 금할 수 없어”
대법원 전경. (사진: 연합)
대법원 전경. (사진: 연합)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에 이어 뇌파계(EEG)까지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의료계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재앙’이라 부를 정도로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인데 향후 이를 둘러싼 엄청난 파장과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1부는 8월 18일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자격정지처분을 취소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한의사 A씨는 뇌신경전문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2011년 뇌파계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사용해 ‘면허된 것 이외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복지부로부터 면허 자격정지와 업무 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한의사 뇌파계 사용이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봤으나 2심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이 합법적이라고 판단, 복지부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한 것.

2심 재판부는 “의료기술의 계속적 발전과 함께 의료행위의 수단으로서 의료기기 사용 역시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는바, 의료기기의 용도나 작동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돼있는 경우 등 한의학의 범위 내에 있는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 2심 재판부다.

2심 재판부는 이어 “복진(腹診) 또는 맥진(脈診)이라는 전통적인 한의학적 진찰법을 통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함에 있어서 뇌파계를 병행 또는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은 절진(切診)의 현대화된 방법 또는 의료기기를 이용한 망진(望診)이나 문진(聞診)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결국 상고심이 진행됐고, 대법원은 원심인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사실상 한의사가 뇌파계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바라봤다는 의미다.
 

의료계는 일제히 분노 표출…“대법원 스스로 법 원칙 무시”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 근간 흔들려 국민 건강 위험 초래

예상치 못한 대법원의 판결 소식이 들리자 의료계는 일제히 분노를 표출하며 성명을 발표,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고 이로 인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는 경고를 남겼다.

우선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눈감아준 판결에 이어 뇌파계까지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함으로써 국민과 환자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로 하여금 각자의 면허 범위에서 각각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를 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로 엄단하고 있는데 대법원 스스로 법 원칙을 무시한 판결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협은 이어 “대법원이 각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그 결과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돼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대한병원장협의회는 “뇌파계 자동 판독 기능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조차 받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대법원이 이를 도외시하고 국민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만한 불합리한 판결을 내려 환자들의 고통이 증대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대한신경과의사회는 “뇌파검사가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쓰지지 않는다는 해외 학회의 의견들은 깡그리 무시당했다”며 “21세기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자 대참사”라고 지적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공동 성명을 통해 “한의사들의 뇌파계와 초음파 기기 사용은 스스로 한의학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무시당한 것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 건강 관점에서 비상식적이고 황당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전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인데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된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은 “한의사들이 의과 의료기기 사용하려는 것은 한의학에 도움이 돼서가 아니라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며 “한의사들은 환자의 안전과 위해는 관심 없고 단지 의과 의료기기 허용 판례를 늘리고 싶어한다”고 언급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최근 창립한 미래의료포럼은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의사의 환자 기만 사기 행위를 인정하고 날개를 달아준 반지성적인 야만적 판결”이라며 “온정주의에 편향된 반의학적인 판결을 하는 법관들은 병원에 오지도 말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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