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 붕괴 현실 되나…대동맥박리 의사 2심도 징역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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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 붕괴 현실 되나…대동맥박리 의사 2심도 징역형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8.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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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형사2심 판결에서 주의의무위반 실형 선고…전문의 면허 취소
의료계 충격·분노 휩싸여…의협, ‘결국 필수의료 붕괴로 귀결될 것’ 경고
응급의학의사회, “응급실 수용거부 더욱 심해지면 모든 책임 사법당국에”

응급의학전공의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재판을 받은 의사 A씨가 형사2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아 의료계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의료계에서는 응급의학과 붕괴와 응급실 수용거부는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서울고등법원은 8월 17일 의사 A씨가 지난 2014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전공의로 근무할 당시 대동맥박리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형사2심 판결을 내렸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은 2심 재판부는 1심에 이어 환자 내원 당시 흉부 CT검사 등 추가 진단을 통해 수술적 치료가 이뤄졌다면 뇌병변 장애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내다봤다.

이번 판결로 인해 의사 A씨는 사건 발생 9년여 만에 전문의 면허가 사실상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

이와 관련 의료계의 분노와 좌절, 안타까움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우선,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그동안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의료사고의 형사처벌화’ 경향에 대해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했으나 의료사고에 대한 민사적 배상과 별개로 응보형주의에 가까운 형사처벌의 남발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음에 분개했다.

의협은 “이번 판결이 필수의료 몰락이라는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의료 상황에 새로운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 명백하므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의료를 포함한 필수의료 과목 선택 기피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필수의료의 완전한 붕괴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도 인간이기에 의료행위 과정에서 간혹 정확한 진단을 놓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어 오랜 수련과 상당한 임상경험을 거친 의료인에게만 고도의 수준을 요구함이 상식적인데도 법원이 사고 당시 1년차 전공의의 진단 잘못을 이유로 징역형까지 선고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한숨을 쉰 의협이다.

의협은 “필수의료를 소생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일본의 약 200배, 영국의 900여 배에 달하는 기소율과 이에 따른 높은 유죄판결률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사고의 과도한 형벌화 경향에 대한 사법부의 책임성 높은 인식전환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언급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회장 이형민)는 해당 사건의 심각성과 위험성에 대해 수차례 지적했고 전문의들의 서명과 탄원서도 제출했지만,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위기의 응급의료가 더욱 위축되고 향후 더 큰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 자명하다는 경고를 남겼다.

응급의학과의사회는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려면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예견 또는 회피하지 못한 점이 인정돼야 하는데, 응급실은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환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방문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즉, 응급실은 향후 경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데다가 응급진단과 최종진단이 다를 수도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완전무결한 최종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처벌해야 한다면 응급의학과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

의사회는 “결국 2,500명 응급의학 전문의들과 460명의 전공의들 모두 언젠가는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향후 흉통환자는 무조건 흉부CT를 촬영해 입원을 시키고 대동맥박리를 수술할 수 없는 병원에서는 흉통환자의 응급실 수용을 당연히 거부하라는 뜻인가”라고 반문했다.

의사회는 이어 “세계에서 유례없는 모든 흉통환자에 대한 CT촬영 지침을 시행하고 이를 삭감할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고발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단순히 전공의 1년 차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응급의료 전체에 대한 사망 선언이자 필수의료 붕괴를 더욱 앞당기는 서막”이라고 부언했다.

특히 응급실 수용거부가 더 심해져 많은 환자가 병원을 떠돌다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 자명하므로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판결을 내린 사법당국에 있다고 일갈한 의사회다.

의사회는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사태처럼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응급의료현장 이탈은 불을 보듯 뻔하고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정상적인 응급의료체계의 운영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책임지지도 않을 일방적인 응급환자 수용 강제 법안을 즉각 철회하고 응급환자 진료에 대한 개인의 형사책임 감면과 국가 책임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응급의료전달체계 논의, 응급실 수용거부금지 논의 등에서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는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논의체 위원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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