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이라 기대보다 우려 큰 ‘한국형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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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이라 기대보다 우려 큰 ‘한국형 주치의’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4.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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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그룹·다학제팀 1·2·3형 5~10개, 지원센터 4형 1개…돌봄·상생 핵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 일차의료개발센터 설치해 4형 실현 가능성 검증
의료계, 회의적 시선 팽배…“정부·거점병원 아닌 지자체·의사회가 주도해야”
한국형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일차의료발전방향 토론회 전경. ⓒ병원신문.
한국형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일차의료발전방향 토론회 전경. ⓒ병원신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야심 차게 설계해 최근 본격적인 실증사업에 돌입한 소위 ‘한국형 주치의 모델’에 쏠린 의료계의 시선에는 기대감보다 회의감이 아직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용의 증가, 돌봄을 포함한 보건의료서비스 요구의 증가, 포괄적 일차의료의 필요성 등이 대두되면서 ‘일차의료 환자 중심 돌봄 의료 제공 모형’ 도입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건보공단은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지역 기반 환자 중심의 일차의료 모형’을 개발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국회의원 주최, 건보공단 주관으로 4월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차의료발전방향 토론회’를 통해 모형 일부가 공개됐다.

이날 박성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단과전문의 및 단독개원이 대부분인 국내 현실에서 원활한 방문 진료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해당 모형은 △1형 단독개원 △2형 그룹개원 △3형 다학제팀 △4형 일차의료지원센터 총 4개의 모형으로 나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단독개원 형태인 1형은 등록제 관리와 위험군 분류 등 등록관리 역할을 하고, 그룹개원(의사 2명 이상 진료의원)인 2형은 1형이 분류한 위험군을 기반으로 재택의료·케어코디네이션·매니지먼트 등 재택관리를 수행한다.

3형인 다학제팀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팀을 이뤄 의료·교육·복지·돌봄을 관리하는데, 2형의 역할을 넘어 집단기반 건강 관리와 지역 네트워크 구성·운영을 담당하는 식이다.

4형인 일차의료지원센터는 1·2·3형을 연계·지원하는 중심기관으로, 지역주민의 건강향상과 보건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일을 맡는다,

1·2·3형 모델 5~10개와 4형 모델 1개가 한 그룹으로 구성되며, 운영 주체는 1·2·3형의 경우 의원급 민간의료기관(의료취약지는 정부나 지자체), 4형은 상급병원을 고려한다.

박성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왼쪽)와 박영민 건보 일산병원 보험자병원정책실 부실장. ⓒ병원신문.
박성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왼쪽)와 박영민 건보 일산병원 보험자병원정책실 부실장. ⓒ병원신문.

특히, 한국형 주치의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현행 행위별 수가 및 저수가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내다본 박성배 교수다.

박 교수는 “확대된 의료기관의 역할을 적절히 보상하려면 혼합형 수가 등 현 저수가 체계를 보완할 새로운 지불제도가 필요하다”며 “의료기관이 등록제 기반 상시상담, 재택 의료 기능 등을 수행하는 만큼 행위별 수가를 상쇄하는 충분한 관리료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해당 모형으로 충분한 진료시간과 지역기반 네트워크 내 거점병원, 특성화 의원, 돌봄 기관 간의 연계 및 상생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다학제 주치의팀이 일차의료지원센터와 협업해 기능에 충실한 환자 중심 일차의료를 제공하는 게 곧 한국형 주치의제도”라고 부언했다.

다시 말해 민간의료기관과 거점병원의 협업에 ‘지역 기반 환자 중심의 일차의료 모형’의 성패가 달렸다는 것이다.

단,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처음 시도되는 모형인 만큼 건보 일산병원에서 일차의료지원센터(4형)의 역할을 우선 수행하는데, 공식 명칭은 ‘일차의료개발센터’다.

일차의료개발센터는 개발된 환자 중심 일차의료 모형을 현장에 적용해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수용성 있는 모델로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치됐다.

우선, 환자를 건강 수준에 따라 분류하고 환자군별 서비스 내용과 제공방식을 검증해 다학제팀의 효율적 운영 방법, 비대면 환자관리 방식 등을 실증하는 한편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성해 환자 연계 협력과 환자 중심 모형에 대한 의료인 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운영 매뉴얼과 적합한 지불 방식을 개발해 지역 기반 환자 중심 주치의 모형을 일차의료기관에 확산시키는 것까지가 일차의료개발센터의 역할이다.

박영민 건보 일산병원 보험자병원정책실 부실장은 “건보 일산병원 내에 일차의료개발센터를 설치해 일차의료지원센터(4형)를 실증하고 다학제 일차의료 시범사업 교육과정 및 매뉴얼 개발을 통해 후속사업을 지원할 것”이라며 “또한 질 평가 수행을 거쳐 연구결과를 검증하고 일차의료 질 관리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역기반 환자 중심 일차의료기관 모형
지역기반 환자 중심 일차의료기관 모형

의료계는 이 같은 한국형 주치의제도의 취지에 일정 부분 공감했으나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오동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지역사회 돌봄 네트워크 구축은 지자체와 보건소, 의사회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문제이지 일차의료지원센터와 같은 거점병원이 나서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 이사는 이어 “돌봄 기능에 대한 재정지원은 필요하지만, 건보공단의 월권으로 일차의료기관에 대한 행정업무 부담과 통제만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건보공단이 원한다면 건보공단 지사 차원에서 만성질환관리 운영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호 대한내과의사회 기획부회장은 “의료계가 주치의제도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큰 이유는 그동안 소통과 파트너십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실질적으로 20년 이후에야 다학제 관리가 본격적으로 가능할 텐데, 자연스러운 연착륙을 위해 단독개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부회장은 또한 “고위험군에 대한 분류 및 관리가 이뤄지도록 적절한 보상도 마련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제한된 모형 안에서 사업을 진행하면 정책적용 범위에 한계가 생길 수 있으니 좀 더 혁신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충형 서울봄연합의원 원장도 “일차의료지원센터 운영 과정에서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며 “사업 초창기부터 민간의료기관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건보 일산병원이 비전을 더 제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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