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을 대상으로 한 물리치료가 구겨진 신문지를 잘 펴서 그동안 누려온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도록 돕기 하기 위한 치료라면, 소아를 대상으로 한 물리치료는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예쁜 그림을 그려주는 치료입니다. 어쩌면 소아물리치료는 재활(Rehabilitation)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창조(Creation)’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성인물리치료와는 그 시작점이 다릅니다.”
서울재활병원 소아물리치료팀을 대표해 최근 병원신문과 만난 황윤태 팀장은 소아물리치료와 성인물리치료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미 많은 삶을 살아온 성인과 이제 갓 삶을 시작한 소아의 입장은 서로 다르기에 물리치료도 이에 맞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황윤태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소아물리치료는 선천적·후천적 이유로 발생한 뇌성마비(Cerebral Palsy, CP), 척수손상(Spinal Cord Injury, SCI),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각종 증후군(syndrome), 발달지연(Delayed Development) 등 신경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중추신경계발달재활치료를 통해 대운동발달의 증진을 돕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진단기술이 발전한 요즘은 뇌 손상이나 기타문제의 조기 발견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후 2~3개월부터 소아물리치료가 시작되기도 하며, 아이들의 뇌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성장기와 사회참여가 시작되는 학령기까지 포함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소아물리치료사는 아이들의 감각적·정서적·신체적 접근을 통해 정상발달과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1:1 운동치료를 진행하는데, 아이들의 근육과 관절에 대한 접근은 물론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이고 해석해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소아물리치료사의 역할을 쉽게 단정 짓거나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의 기질과 성향, 가정환경, 보호자의 양육 태도 등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소아물리치료의 국내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비록 서울재활병원이 그동안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여전히 인프라나 사회적 인식 등은 소아물리치료의 중요성에 비해 부족한 실정.
게다가 소아재활이라는 전문성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낮은 수가로 인해 물리치료사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전에 소아재활 영역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곧 재활을 통해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소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충분한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황윤태 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짜 재활은 치료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환자가 필요한 교육까지 제공해 삶을 바꿔주는 과정이다.
황윤태 팀장은 “환자가 병원에 찾아와 치료를 받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주변 환경이 부족하다면 그것을 충족할 수 있도록 도와 결국 가족과 주변인들의 삶까지 바꾸는 게 소아물리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라며 “소아 재활 영역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떤 목표를 우선해서 세우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졸업 후 서울재활병원에서만 12년째 근무하고 있는 황윤태 팀장은 그동안 수많은 아이를 치료하며 겪은 경험을 지역사회와 꾸준히 공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호자 교육자료 제작·배포, 장애아동 체력증진 운동회 개최, 공공재활 의료사업 기획, 해외 재활 소외 지역 봉사활동 및 치료사 교육 등 서울재활병원 소속으로 황윤태 팀장이 추진한 사업은 다양하다.
이처럼 황윤태 팀장이 소아물리치료에 진심이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정신지체장애 1급인 친형을 보며 꿈꾸게 된 소아물리치료사
힘든 현실 속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돕는 것이 사명이자 곧 비전
황윤태 팀장의 친형은 정신지체장애 1급으로 태어났다.
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그는 진로를 결정할 때 막연히 ‘장애인을 위해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대학교 교육 과정에 물리치료학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황 팀장은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임상에 취직할 때 성인환자를 치료할 것인가, 소아환자를 치료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며 “친형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기에 소아환자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은 후 병원실습도 소아환자가 있는 병원만 찾아다닐 정도로 소아물리치료에 진심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막상 친형 때문에 시작한 소아물리치료사의 길이지만, 몸이 불편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 아이들이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서 스스로 구르고, 기고, 걷다가 직접 두 발로 퇴원하는 것을 보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반면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환자가 아니라는 게 황 팀장의 설명이다.
신경근육병증(Spinal Muscle Atrophy, SMA)이라는 진단명을 받은 한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황 팀장의 치료를 받았으나 학령기에 도달하기 전 퇴행 때문에 독립보행을 못 하게 됐다.
결국 이 아이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초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장애아동이 학업을 이어가기에 너무 높은 국내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이민을 떠났다.
이때 황 팀장은 외국으로 떠나게 된 아이가 현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동작(Activties of Daily Living, ADL), 화장실 이용법, 의사표현 방법, 자가운동법, 기립기 및 휠체어 사용법 등을 교육했고 현재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연이 됐다.
특히 이 아이는 국내와는 달리 장애아동에 친화적인 외국의 소아물리치료 및 사회 분위기 등을 꾸준히 황 팀장에게 소개했고, 이를 전해 들을 때마다 언젠가 국내 환경도 이와 비슷하게 발전할 것이라 믿으며 소아물리치료사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그다.
황 팀장은 “아직까진 여러 면에서 힘들지만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 국내 소아물리치료 환경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며 “상태가 더 좋아지게 하지 못한 환자에 대한 미안함,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꿈꾸도록 하고 싶은 사명감을 바탕으로 현실의 벽에 좌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그는 “내가 좋고, 환자가 좋고, 보호자가 좋고, 병원도 좋고, 궁극적으로 사회가 좋아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소아재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며 “‘치료를 넘어선 삶을 함께 꿈꾼다!(Beyond Treatment, Dream in Life!)’는 서울재활병원 소아물리치료팀의 슬로건 아래 팀원들과 지속해서 도전하고 결과를 성취해 소아물리치료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시인인 어머니는 40년 전에 단 30분의 치료를 위해 먼 거리를 오갔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재활병원도 많고 사설센터까지 있다”며 “앞으로 아이들이 누려야 할 의미있는 재활시스템의 정착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