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급불균형 해법으로 ‘순환정지 후 기증(DCD)’ 도입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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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급불균형 해법으로 ‘순환정지 후 기증(DCD)’ 도입 제시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3.03.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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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이식학회, 법‧제도적 보완 필요…시범사업 통해 활성화 제안
복지부, 사회적 합의가 우선…연명의료제도에 부정적 영향 미칠까 우려

정체된 뇌사 장기기증으로 장기수급불균형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순환정지 후 기증(Donation after Circulatory Death, DCD)’ 제도가 그 해법으로 제시됐다.

국내 뇌사자 장기기증은 2021년 6,518건이 발생해 21,370건의 뇌사자 장기이식수술이 시행됐다. 이는 전체 장기이식의 30%로 뇌사장 장기이식이 국내 장기이식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는 2016년 573명이 발생해 인구 백만명당 12.2명의 뇌사 기증자 발생빈도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매년 점차 감소해 2021년에는 442명으로 감소한 상태다. 이러한 뇌사 장기기증자의 감소는 장기이식 대기자의 급증(최근 10년간 매년 10% 이상 증가)과 맞물러 기증자-대기자 간의 불균형 악화로 장기이식 대기자의 사망률을 높이고 있다.

최근 5년간의 생체기증자의 장기이식의 건수도 정체인 상태에서 뇌사자 장기기증의 감소는 장기이식이 필요한 말기장기부전 환자들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정춘숙‧강훈식‧고영인‧서영석‧신현영‧이용빈‧최혜영 의원,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과 대한이식학회(이사장 김명수)는 3월 7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장기기증 제도의 발전 방향 모색’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개최하고 DCD 제도 도입과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국회, '시대적 변화에 따른 장기기증 제도의 발전 방향 모색' 정책 토론회ⓒ병원신문
국회, '시대적 변화에 따른 장기기증 제도의 발전 방향 모색' 정책 토론회ⓒ병원신문

이날 발제자로 DCD에 대해 설명한 김동식 대한이식학회 장기기증 활성화 위원장(고려대의대 안안병원 교수)은 DCD 도입에 따른 법적 문제와 논란을 사전에 없앨 수 있도록 장기이식법 개정과 연명의료결정법과의 연계, 시범사업 도입을 제안했다.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은 순환이 정지된 후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뇌사 장기기증은 뇌는 죽었지만 심장은 뛰는 상태에서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은 심장이 뛰지 않는 뇌사 상태인 사람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말한다.

DCD를 세부적인 기준으로 보면 총 5개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는데 카테고리1은 병원 도착 시 이미 순환정지가 발생한 경우로 스페인은 이 기준에서도 장기기증이 가능하다.

이와 비교해 카테고리3은 뇌사상태가 아닌 환자에서 가족의 동의 아래 연명의료 중단 후 순환정지가 발생한 경우로 연명의료 장치를 제거하기 전에 기증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한 후 생명유지 장치를 멈추고 난 이후 장기기증을 하는 것이다.

이외에 카테고리4는 이미 뇌사자에서 장기 적출 전 순환정지가 발생한 것으로 예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허용되고 있다.

김동식 위원장은 “DCD는 환자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무의미한 상태”라며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이후 기증 의사를 타진하고 기증 의사가 확인되면 특정한 시간에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하고 심장박동 정지 시점에서 일반적으로 5분의 시간을 기다려 자발적 순환재개가 안되는 것을 확인한 후 장기기증 절차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외국의 경우 DCD 장기기증을 시행하는 국가가 매우 많다. 많은 나라에서 뇌사자 숫자는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DCD를 채택한 이후로 사후 장기기증이 많은 국가에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네덜란드는 전체 장기기증의 절반이 DCD라고 볼 수 있다”며 “국가별 사후 장기기증에서 뇌사 장기기증이 차지하는 비율과 DCD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스페인은 기증자의 3분의 1, 미국은 20~30%, 영국은 거의 40~60%를 육박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후 장기기증 전체가 뇌사후 장기기증으로 보면 되고 DCD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국내에서는 카테고리4만 제한적으로 허용된 상태이며 카테고리3이 가능해야 실질적인 DCD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6건의 DCD 모두 카테고리4로 뇌파검사를 모두 거쳐야 만이 장기기증이 가능하다”면서 “DCD를 하려 KODA-KONOS에 보고를 해야 하고 의료기관에서는 윤리위를 열어야 하는 등 규제가 있어 카테고리4 마저도 급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카테고리4가 제한적으로 시행됐던 이유는 장기 수혜자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DCD를 시행하려면 카테고리3과 같이 연명의료 중단하고 시행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하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태로 법으로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어주면 의료 현장에서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사망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 부재가 DCD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김 위원장은 “장기 적출 대상에는 살아있는 사람과 사망한자 및 뇌사자로 되어 있지만 사망한 자에 대한 정의가 부재하다”면서 “장기이식법에 DCD를 직접적으로 허용하거나 제한하는 문구 자체가 없는 만큼 이 부분이 명확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DCD는 연명의료결정법과 연계 시 논란의 여지를 없앨 수 있다”면서 “카테고리3 DCD는 연명의료중단의 이행에 한정해서 시행할 경우 법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 장기이식법상 장기 적출이 가능한 사망한 자에 대한 정의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큰 틀에서 법안 개정 이후 시범사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의료현장의 잠재적 혼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위원장은 “시범사업으로 새로운 제도 도입에 다른 심리적 부담감을 완화할 수 있고 장기구득 기관 등의 업무량 증가정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통해 대국민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서는 그는 “DCD 도입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환자들과 뇌사로 추정되지만 일부 판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장기기증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법이나 제도적으로 일부 정비가 될 경우 기증 활성화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이식학회 장기이식의료기관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형준 경희대병원 교수도 토론자로 나서 명백하고 합리적인 법적 근거 마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행법하에서 DCD를 도입할 경우 사회‧윤리적 논란에서 자유로 울 수 없는 만큼 법적 근거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형준 교수는 “장기이식법에 따라 뇌사판정이 처음 시행될 당시 의학적‧과학적으로 뇌사가 사망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의의 과정을 소홀히 해 장기이식법에 뇌사가 사망이라고 단정하지 못하고 단지 장기기증을 전제로 할 때만 사망판정이 가능하게 하여 뇌사자 장기 적출을 합법화하기 위해 장기이식법이 제정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서 “이 때문에 뇌사자가 사망이라는 명백한 의학적 사실은 뇌사자 유가족이 장기기증을 동의하면 사망자가 되고 동의하지 않으면 뇌사자는 살아있는 자도 아니고 사망한 자도 아닌 상태가 됐다”면서 “하나의 의학적 상태가 불안정한 법률 조항에 따라 사망한 자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뇌사를 사망기준으로 인정하는 의료 현장과 법률과의 괴리로 인해 결국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뇌사판정기준에 대한 불신과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한다는 것.

안 교수는 “따라서 뇌사와 사망판정기준에서 오는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DCD 제도 도입에 있어 명백하고 합리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망판정의 기준을 장기이식법에 명시하는 적극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러한 대한이식학회의 의견에 정부는 DCD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수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보건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 김정숙 과장은 “뇌사자 중심의 장기기증 확대뿐만 아니라 DCD 확대 역시 필요하다”면서 “다만 DCD는 장기기증법 개정과 연명의료와의 연계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또, 현재 DCD 제도와 관련해서도 중점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김 과장은 “뇌사자 판정과 장기기증 모두 상담 등의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데 연명의료 중단 역시 관련 정보를 보고 받고 기관에서의 출동 여부 등을 경정하게 된다”면서 “사실 뇌사자 통보도 의료기관에서 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DCD에서도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검토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되면 바로 시행해야 한다. 중단 동의와 동시에 수혜자가 바로 이어져야 하는데 시간적으로 이뤄지기가 힘든 만큼 이런 부분을 어떻게 제도로 개선할지 고민이 된다”면서 “이식 대상자 선정전 장기이식 적출과 관련된 문구를 법에 넣자고 하는데 그럼 어떤 장기를 적출할 것인지, 또 적출이 가능한 의료기관에서 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적인 문제 등등 의료계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DCD 4번째 단계의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3단계 논의와 함께 4단계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검토를 해야 한다면서 그나마 사망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이뤄질 경우 4단계는 명확해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서 장기기증에 대한 통보와 교육, 기증자에 대한 예후, 지원에 대해서도 적극 공감한다면서 뇌사 통보자 중 기증 자체를 거부한 분들이 약 45%로 이런 부분들을 고려할 때 기증자에 대한 교육과 예후,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이신영 사무관은 DCD 도입이 연명의료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신영 사무관은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윤리적인 교육 강화와 법적 절차 및 서식에 대한 간소화가 필요해 보인다”며 “현재도 의료진들이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데 DCD가 의료인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사무관은 “연명의료 중단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은 대상을 말기 환자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임종기로 굉장히 국한해서 시행하는데 연명의료 환자와 임종기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며 “혹여라도 DCD 도입으로 연명의료 제도에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사무관은 임종기 환자는 암 등 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고령자도 많아 장기 등이 이식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고 급박하게 심정지 등이 발생할 경우 DCD를 적용하는 것 역시 연명의료 제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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