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라석찬 대한병원협회 명예회장을 20년 만에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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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라석찬 대한병원협회 명예회장을 20년 만에 만나다
  • 윤종원 기자
  • 승인 2022.07.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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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회무로 병협 위상 제고
지역거점병원 확대, 의료법 전면 개정 등 제언

대한병원협회 창립 63주년을 맞아 제30대 회장(2000년 5월 4일∼2002년 5월 7일)을 역임한 라석찬 명예회장(홍익병원 이사장)을 20년 만에 인터뷰 했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라 몇 번의 요청 끝에 성사된 자리였다. 곱게 빗은 머리에 가운을 입고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이 변함없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 라석찬 명예회장은 미소와 함께 메모가 담긴 A4용지 1장을 전했다. 회장 재직 시 기억에 남았던 일들과 병원협회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을 손수 적은 것이다. 대한병원협회 회장직을 그만 둔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병원협회와 회원병원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라석찬 명예회장이 재임한 기간은 격랑이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약분업 반대투쟁이 거셌다. 개원의는 파업하고, 전공의와 봉직의사는 진료현장을 떠났다. 무기한 파업투쟁에 병원들도 동참해 수술실과 중환자실까지 폐쇄해서 중증환자진료를 거부해달라는 의협의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병원협회는 논의 끝에 파업참여는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들 때문에 각 회원병원의 재량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대신 파업에 나선 전공의들이 유급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봉직의사와 전공의 파업 참여로 병원 경영은 크게 악화됐다. 편향된 수가조정으로 의원급 경영이 호전되자 봉직의들은 개원하겠다며 병원을 떠났다. 이중, 삼중고를 겪는 시기였다. 

라석찬 명예회장은 임기 대부분을 의약분업 수습책 마련에 몰두했지만 그 외 여러 어려움에도 직면했다. 2000년 7월 행정자치부가 의료법인 병원들에 지방세를 부과하는 지방세법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 한 것이다. 

병원협회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법인간의 조세형평성 위배와 의료기관의 경영 한계 등을 이유로 지방세 부과 철회를 건의했고, 입법예고를 철회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2001년 10월에는 중소기업법상 중소병원들의 범위 확대 요구가 받아들여져 개인병원들의 대부분이 중소기업 범위에 포함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라석찬 명예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당시만 해도 병원협회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일부 임원들의 비협조와 병원협회 노조와 집행부 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으로 이를 극복했다.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회무 추진으로 임직원의 협조와 이해를 구했다. 결국 비협조적이었던 임원들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고, 병원협회 노조는 자진 해체를 선언했다. 

“취임 전 병협 노조는 오랫동안 집행부와 법정 다툼을 하는 등 극한 대립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회장 취임 후 노조원을 불문하고 실력에 따라 주요 보직을 맡겼습니다. 얼마 안 돼 노조임원 몇 사람이 찾아와 노조를 해체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때는 여차하면 다시 노조를 결성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리곤 그해 11월경에 노조원들이 스스로 마포구청에 해체 신청을 했어요. 그래서 약 15년 된 병원협회 노조가 해체된 겁니다. 그 후 병원협회는 전 직원이 화합해 회원병원 권익증진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모두가 고마운 일입니다.”

라석찬 명예회장은 회무별 위원회를 설치해 사전에 논의한 후 상임이사회에 상정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임원들에게 역할을 부여해 회무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후 협회 내 회의가 많아졌고,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직원들에게는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충실히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자기 직장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동시에 직장에서 필요한 인물이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했다.대학원 진학도 독려했다. 직원들이 역량을 키워 사무총장, 상근부회장까지 올라가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병원협회의 위상은 정부와 국회 등에서 높지 않았다. 라석찬 명예회장은 합리적인 정책 대안과 권익 찾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여러 회의나 논의에서 병원협회가 배제되는 것을 보고, ‘법정단체 추진’을 모색했다. 그 결실은 2004년 1월 28일에 맺었다. 법정단체 출범 후 병원협회는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결정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라석찬 명예회장은 중소병원 활성화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했다. 

먼저 정부의 지원으로 지역 거점병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 의료전달체계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거점병원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해소 될 수 있다. 

이어 중소병원에 대한 규제 완화와 세제 일원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이나 법인이 병원을 설립할 때는 여러 혜택들이 있지만 개인병원은 없다고 했다. 수입은 적은데 세금은 많이 내는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라석찬 명예회장은 1973년 2월 16일 의료법이 전면 개정된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후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기에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새로운 의료 환경에 맞는 의료법 체계를 갖춰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역별로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대학병원에는 감염병 병상을 의무화해 유사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라석찬 명예회장의 생활신조는 ‘진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수라고 했다. 병원협회 회장 시절에는 병원계 공생을 위해 원칙과 상식을 지켰다. 정도를 걸으며 회무를 수행했다. 때로는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아내는데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대과없이 회무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본인이 하고 싶다고 병원협회 회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 회원병원장들이 원하고 병원협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희생 봉사할 수 있는 분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회장이 선출되면 전 회원들이 단합하여 새 집행부를 적극 후원해야 합니다.”

군의관 제대 후 서울로 상경해 1972년 홍익의원으로 시작한 홍익병원이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경천애인(敬天愛人)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사람중심의 생명을 존중하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업무를 본다. 집무실에는 ‘홍익인간’이라는 글씨의 휘호가 여러 개 걸려 있다. 

라석찬 명예회장은 “고맙다”는 말을 자주한다. 한두진 명예회장, 성익제 당시 사무총장과 여러 병원협회 직원들과의 일화를 전하면서도 "고마운 분들”이라고 했다. 

후배 병원장들에게는 “선진 교육을 잘 받아 모든 면에서 잘하는 것 같은데, 좀 더 단합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협조하고 지역사회에 봉사도 많이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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