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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진료실 안의 개밥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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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진료실 안의 개밥바라기
  • 병원신문
  • 승인 2021.1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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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준 CM병원 내과 과장(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유형준 CM병원 내과 과장(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유형준 CM병원 내과 과장(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마지막 환자 기록을 마무리할 즈음, 흥미진진한 얼굴을 차분히 들이밀며 모처럼 최 화백이 찾아왔다. 별의 오랜 전설을 화폭에 담아내는 오랜 친구다. 오랜 토기처럼 깊은 갈색 하늘에 촘촘히 때론 성글게 제자리에 맞추어 수십 수백 권의 서사를 별로 그려내는 정성과 열정은 감탄을 자아낸다. 요즈음 들어 시력이 약해진다며 마땅한 안과 의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곁들여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복사지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유 박사, 이 시 알지? 롱펠로우 시야.”

오, 내 진정 사랑하는 헤스페루스여! / 나의 사랑하는 아침과 저녁별이여!

오랜 구애 끝에 결혼한 아내 파니에게 보낸 롱펠로우의 유일한 사랑의 소네트, ‘저녁별’의 한 구절을 짚으며 최화백이 말을 이어갔다.

“여기 나오는 별은 저녁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 헤스페루스야. 새벽 동녘에 뜬 금성을 ‘샛별’, 초저녁 서녘에 나타나면 ‘개밥바라기’라 부르지. 주인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마칠 무렵,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

“개밥바라기별, 황석영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데......” ‘개밥바라기별의 이미지가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의 가슴 위에 물기 어린 채로 달려 있게 되기를 바란다.’던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말을 받았다.

“헤스페루스, 그 개밥바라기가 야맹증과 관련이 있어. 어두우면 안 보이는 병 말이야.”

들고 있던 시를 천천히 탁자위에 놓고 야맹증과 헤스페루스를 엮어 갔다.

“야맹증을 영문으로 헤스페라노피아라 하지. 헤스페루스와 안 보인다는 뜻의 아노피아란 단어를 합쳐서 만든 용어라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영국 의사 텔슨이야. 어스름한 초저녁엔 보이다가 깜깜한 밤이 되면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개밥바라기의 속성을 살펴 이름을 지었겠지. 혹시 텔슨은 저녁 어스름, 진료실 창밖 서녘 하늘을 가리키며 환자에게 “개밥바라기가 보이세요? 안 보이세요?”라고 물어서 진단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네. 최 화백, 대단하지 않은가? 보이고 안 보이고를 진찰하고 진단하는 의학적 행위에 별을 따다 이름 지은 솜씨. 하늘 전체를 하나의 시력표로 여겨 별을 시력을 판정하는 문자로 사용한 그의 명명법은 얼마나 시정(詩情)이 넘치는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느릿하게 뜨면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의학은 잘 모르지만, 점성술과 의학이 밀접하게 다루어졌던 적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네. 아마, 당시엔 진료실에서도 하늘이 제대로 보였을 거야. 저녁, 진찰 중에 고개만 돌리면 창밖에 별이 총총했을 거야. 하늘 대신에 빌딩을 올려다보고, 별 대신에 급히 흘러가는 문자 기호를 봐야만 하는 지금 우리네 삶에선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붙박이별이나 된 양 처음 앉던 자세 그대로 별과 의학에 관해 한참 늘어놓은 이야기를 간동그리면 다음과 같다.

‘별과 의학의 관계를 깊이 연구한 이들은 점성의학을 발전시켰다. 각각의 별자리를 사람의 신체 부분들과 연관 지었다. 점성의학자는 먼저 개인의 출생 천궁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신체 부위들을 들어 조언을 보태었다. 예를 들어, 많은 행성이 양자리에 몰려 있는 경우엔, 양자리와 머리와의 관련성을 근거로, 두통을 앓을 확률이 더 높다고 예견했다.

점성의학은 십사 세기에 아비뇽에 머물고 있던 교황의 권솔과 고위 성직자들도 흑사병에 걸려 네 명 중 세 명이 죽었을 때도 활약했다. 페스트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했고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온갖 낭설과 미신이 횡행하였다. 별의 운행은 신의 영역이라는 믿음 속에서 혜성 출몰설, 신의 징벌설 등이 난무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파리 대학 의학부가 제시한 ‘토성, 목성, 화성이 이례적으로 물병자리궁에 모여 뜨겁고 습한 상황을 만들어내서 지구가 독한 유기체를 발산하여 페스트가 발병하게 되었다.’는 견해였다. 실제로 행성 화합설을 들은 교황의 주치의는 교황에게 역병의 원인이 물병자리 행성 탓이라고 보고한 기록이 있다.

유럽뿐 아니라 전통 중국 의학, 아유르베다 등도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라는 믿음에서 몸 곳곳의 기관이나 계통을 고유의 원소물질과 연관 지었다. 사람은 작은 우주 또는 우주의 정령이어서 우주의 모든 모습과 기운이 하나로 압축되어 사람 속에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한의학자인 손진인은 “하늘에 해와 달이 있으므로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자고 깨는 것이 있다.”고 했다. 자연과의 화해와 조화 속에서 사람의 참다운 모습을 찾고자 했고, 자연과 하나로 합쳐질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정체성이 현실적 그리고 이상적으로 또렷해진다고 여겼다. 여기서 자연은 사람 밖의 모든 외적 환경과 같은 말이다.’

별이 아니라 별의 속사정을 그리는 외곬답게 동서고금을 마음껏 오가던 별과 의학 이야기는 정신분석학자 융까지 불러왔다.

“유 박사, 융 있잖아 융,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융도 10여 만 가지의 꿈을 분석하고 나서, 꿈의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천지와 음양의 조화가 이루는 주역 철학임을 깨달았다고 하더군. 이 역시 우주의 행성들로 구성된 우주가 사람 몸에 존재하는 소우주를 지배한다는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증거지.”

별의 서사와 의학적 현상의 끈질긴 연결을 진지하게 풀어내던 최 화백이 말을 맺으며 슬그머니 일어서 창가로 다가섰다. 마치 별이라도 발견한 듯.

별은 하늘에서 빛나고 별빛은 화살처럼 공기를 헤쳐 땅 위에 내리고, 나의 눈은 그 빛을 느껴 안다. 하늘의 별빛은 하나의 천문, 즉 하늘의 수없이 많은 무늬 중의 하나다. 나는 땅 위에서 자신만의 인문, 즉 사람 무늬를 짓고 살아간다. 때로 하늘을 바라 천문을 보고 나름대로 느껴 일상의 인문을 더러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구름 가득한 그믐밤 하늘을 보면 저절로 어두워지고, 탁 트인 들녘의 빛나는 별을 보면 슬그머니 밝아진다.

천문학은 하늘의 무늬를 다루고, 인문학은 사람의 무늬에 관심을 둔다. 의학 역시 사람의 무늬에 집중한다. 질병의 증상과 징후는 몸 안의 병적 변화가 드러내는 무늬이고, 의학은 바로 그 무늬를 살피고 연구하고 실행하는 인문학이다. 그러나 하늘 없는 개밥바라기가 없듯이 사람의 무늬만 살피는 의학은 어색하다. 사람의 무늬도 하늘 땅 세상의 무늬와 함께 헤아려야 더 도드라진다. ‘별무리 총총 박혀 있는 저 밤하늘이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 만 하는 길의 지도일 수 있던 시대, 하늘의 별빛과 인간 영혼 속의 불꽃이 하나이던 시대’(‘소설의 이론’ / 게오르크 루카치)를 동경하여 야맹증이란 이름 속에 뜬 개밥바라기는 진료실 안에서 의학적 인문으로 반짝이고 있다.

적어도 개밥바리기에 한하여 그 저녁 그 시간, 나의 눈은 의학과 별이 만나는 경계, 접선, 접점이 된다. 헤스페라노피아는 보여야 할 것이 안 보이는 병이다. 망막의 막대세포는 지극히 좁은 현미경적 공간이다. 그 좁은 공간, 얇은 망막에서 일어나는 ‘보다 – 보이다’와 ‘안 보다 – 안 보이다’의 의학적 구별은 진료실에서 개밥바라기와 함께 한다.

“저녁 먹으러 가세.”

진료실 문을 나서는 최 화백이 어둑해진 도심의 하늘을 흘낏 보며 동의를 구한다.

“나이 들어설까? 요샌 하늘의 별보다 그림 속의 별이 더 잘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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