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카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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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카포티
  • 윤종원
  • 승인 2006.05.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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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가 보증한 명연기, 카포티

뛰어난 연기력에 견주어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관심을 상대적으로 받지 못했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진가가 드러난 영화다. 2006년 미국 아카데미가 남우주연상을 안긴 것에 대해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정도의 명연기가 시종 "카포티"를 이끌어간다.

"카포티"는 일반 대중에게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유명한 작가 트루먼 카포티를 일컫는 것. 그의 생애 최후 시기를 들여다본 이 영화는 카포티의 역작이자 출간당시 "이 시대 최고의 논픽션"으로 평가받았던 "인 콜드 블러드(냉혈한)"의 탄생 과정을 담고 있다.

"인 콜드 블러드"는 카포티가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느끼는 기묘한 공감대를 기록한 작품. 부모의 이혼과 모친의 재혼으로 이웃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 작가)가 유일한 친구였을 만큼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낸 트루먼이 "나는 앞문을 열고 나갔고, 그(페리)는 뒷문으로 나갔을 뿐"이라고 말할 만큼 살인마와 자신의 삶을 같은 궤도에 올려놓았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독특한 억양으로 어린 시절부터 놀림을 받아왔고, 어린시절의 불행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유명 작가로서의 허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살인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연민과 갈등을 느끼는 천재 작가 트루먼을 천재적일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트루먼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캔자스주 호젓한 농가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에 주목한다. 유일한 친구 넬 하퍼 리(캐서린 키너)와 함께 그곳을 찾은 트루먼은 자신의 명성을 적절하게 이용해 사건에 다가가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두 살인마를 만난다.

두 사람 중 왜소한 체격에 다리마저 저는 인디언계 페리(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에게 주목한 트루먼은 작품을 위해 감방에서 함께 살다시피하며 그의 인간적 면모를 파헤치려 한다. 페리가 왜 살인까지 이르게 됐는지 주목하며 페리의 성장과정에 자신의 유년시절을 투영한다.

글을 쓰기 위해 페리를 조금이라도 더 살려둬야 했던 트루먼은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 그들에게 도움을 주며 책을 써내려가지만 예상치 못하게 재판 기일이 길어지면서 그는 책을 4년 넘게 완성하지 못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자꾸만 늦춰지는 책의 발간이 문제가 아니다. 트루먼은 페리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 심리적 공황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페리가 결국 처형받아 5년반이라는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된 "인 콜드 블러드"는 트루먼의 최고 역작으로 평가받지만, 이후 그는 펜을 놓고 알코올중독자가 돼 생을 마감했다는 에필로그가 인상적이다.

페리와 트루먼 사이의 미묘한 교감, 페리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페리의 덫에 걸려버린 트루먼의 초조함. 당시 트루먼이 느꼈을 감정들을 호프먼이 섬세하게 포착해내 절필하게 된 트루먼의 심리에 관객이 공감하게 된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박진감 있는 화면이나 뜻밖의 사건 등에 있지 않다. 지켜보다보면 부지불식간에 합류하게 되는 트루먼과 관객과의 교감이 인지되는 순간 느껴진다.

25일 개봉. 상영시간 98분.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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