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계 의사들의 외침…“손목을 묶길 원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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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계 의사들의 외침…“손목을 묶길 원하나요?”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1.08.30 0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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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외과계 학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반대 긴급성명
외과계 의사들이 우려하는 5가지 이유 설명…법안 철회 촉구
이미지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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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계 의사들이 정부와 국회를 향해 진정 세계 최초로 의사들의 손목을 묶길 원하는지 되물었다.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이 묶인다면 의료체계 붕괴는 물론 환자의 생존율과 회복율을 떨어뜨리는 등의 심각한 문제가 여럿 초래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한신경외과학회(이사장 김우경), 대한외과학회(이사장 이우용),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이사장 김웅한),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 이필량), 대한비뇨의학회(회장 이상돈)는 8월 28일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 반대하는 공동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5개 학회는 법안 발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기 이전에 일부 일탈 의사들의 수술 과정에서 생긴 의혹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 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게 한 점을 두고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전국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사투를 벌이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 철회를 요청했다.

특히 이들은 총 5가지의 이유를 들어 수술실 CCTV 설치로 인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강조했다.
 

의료사고 및 분쟁 대비해 방어적 수술 팽배

우선, 의료 사고 및 분쟁에 대비해 최소한의 방어적인 수술만을 하게 돼 환자의 생존율과 회복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수술과정을 CCTV로 녹화 하는 것만으로도 의사들은 향후에 이 영상으로 인해 의료 분쟁이 발생을 할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결국, 이러한 생각은 외과계 의사로 하여금 촬영이 돼도 문제가 없을 만큼만 소극적이고 안전하게 수술을 진행하게 만든다는 의미.

예를 들어 악성 암환자의 경우 후유증이 남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 암의 완치율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수술과정에서 정상 조직과 암과의 경계가 불분명하면 수술자의 판단에 따라 완전 절제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녹화되고 향후 의료 분쟁의 증거로 사용돼 외과계 의사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되면, 무리하게 절제를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남기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는 게 이들 학회의 지적이다.

즉, 암환자들의 재발률과 사망률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상급병원 환자 쏠림 심해져 적절한 수술 시기 놓칠 것

두 번째로 응급, 질식 분만, 비뇨의학과 신장절제술, 전립선 절제술, 흉부외과 수술 등 수술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수술을 외과계 의사들이 기피하거나 소극적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들 5개 학회는 “흉부외과의 심혈관 수술, 뇌혈관 수술의 경우 예기치 못한 혈관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외과계 의사들이 최선의 주의 의무를 다하고 조심을 해도 환자의 상태나 수술 부위의 유착 여부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혈관 손상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가피한 상황 발생 가능성을 동의하에 수술을 진행하는 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과계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인데, 수술과정이 동영상으로 남아 검증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고위험 수술은 포기하고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부언했다.

즉, 상급병원으로의 쏠림이 심각해지면서 고위험 수술 누적도 덩달아 심해져 환자들은 수술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라는 경고다.
 

제한된 CCTV 녹화 정보로 집도의 집중도만 저해

현재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서는 녹음은 하지 않고 수술실 영상만 기록하는 것으로 돼 있어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내용은 알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성희롱 등과 같은 의사들의 비도덕적인 문제 발언을 억제하는 데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또한 최근의 수술 경향은 내시경 또는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CCTV 녹화로 수술 부위나 수술과정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신경외과 수술의 경우 미세 현미경을 보면서 뇌수술과 척추 수술을 진행한다”며 “CCTV로 녹화되는 영상은 신경외과 의사 2명과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 등이 환자 주변에 수술 시간 동안 서 있는 모습만 찍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녹화된 영상이 의료 사고 예방에 어떠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수술하는 의사가 녹화되는 영상에 보일 행동에 신경을 쓰게 돼 수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환자에게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이미 현미경 수술이나 내시경 수술 등은 대부분 녹화를 하고 있고 각종 모니터링 장비 내용도 기록하기 때문에 환자 주변에 서 있는 모습만 찍는 것은 의료 사고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민감한 신체 녹화로 인한 2차 피해

네 번째로 비뇨의학과 수술, 산부인과 수술, 대장, 유방 수술과 같이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가 녹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수술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신체가 찍힌 영상이 CCTV를 녹화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유출된다면 심각한 2차 피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들 학회는 “일부 직원의 일탈 또는 해킹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CCTV녹화본 유출은 환자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과계 지원 기피로 의료체계 붕괴 가속화

끝으로 외과계 지원 기피로 인한 의료체계의 붕괴를 CCTV 설치 의무화로 인한 다섯 번째 폐해로 꼽았다.

젊은 의사들의 외과계 기피 경향은 수십년 전부터 시작됐고, 이로 인해 고령화된 기존 인력의 근무 강도 증가는 신체적·정신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다.

힘든 수련 과정과 장시간동안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전문성과 노동량에 비해 보상은 별로 없고 수술로 인한 분쟁만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흉부외과의 경우는 신규 흉부외과 의사보다 은퇴하는 의사가 더 많아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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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과에 비해 어려운 외과계를 두고 CCTV 녹화까지 한다면 앞으로 의사들은 외과계를 더욱 기피하게 될 것”이라며 “전국에 외과계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못 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5개 학회는 다행히 아직까진 많은 외과계 의사들이 부족한 인력과 신체적·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중증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같은 노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술 성공률로 이어졌다는 게 5개 학회의 자랑이다.

이들은 “극히 일부 외과계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서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어 수술이 꼭 필요한 대다수 국민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을 철회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의사들 스스로의 자정 노력과 함께 다른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간곡히 촉구다”며 “앞으로 외과계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무한히 갈고 닦았던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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