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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상상력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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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상상력의 결정체
  • 병원신문
  • 승인 2021.01.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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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외과의사회 박진규 회장
박진규 회장
박진규 회장

정책은 권력을 기반으로 하고, 권력은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며, 다수의 지지란 많은 몽매함과 일부의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다. 정책이란 거의 모든 경우 다수를 위해 시행되지만 항상 합리적인 것만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2월 발표한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은 ‘비급여관리 혁신, 국민중심 의료보장 실현’이란 슬로건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대책은 매우 포괄적이고 장기적 비전을 통한 추진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합리적 이성에 기반하기보다 인기 영합적 상상력에 근거하고 있어 실현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이번 대책은 보장성 강화 정책의 목표가 되는 본인 부담률 하향이라는 방향성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른 4가지 분야별 추진계획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비급여가 잘못된 것이고, 根源적 악(惡)이고, 반드시 없어져야할 적폐(積弊)라는 사고가 깔려있음을 느끼게 한다.

잘못된 분석은 잘못된 해결책을 가져오고, 잘못된 해결책은 오히려 목표를 퇴색하게 한다. 우리는 최근 부동산 시장을 통해 잘못된 분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목도하고 있다. 이번 비급여 관리대책이 부동산 대책처럼 비급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근간으로 잘못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여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관리 대책이 밝히는 것처럼 비급여는 신의료 기술의 도입을 촉진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병원간의 실질적 차이를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질병에 대한 모든 병원의 치료비는 동일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이 있기는 하나, 모든 병원의 진료비는 같지 않고, 그럴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다. 이 불편한 진실은 모든 이들이 가지는 공통 인식이며, 또한 개선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정부와 복지부는 진료를 공산품처럼 획일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진료는 그런 게 아니다. 같은 물감으로 누군가는 명화를 그려내고, 같은 펜을 사용해 누군가는 명곡의 악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진료는 규격화할 수 없는 선택적 재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수도권으로 환자가 몰리고, 명의를 찾는 정서가 이 불편한 진실이 일반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관리 대책뿐만 아니라 정부와 복지부는 그간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진료를 공산품으로 바라보고 획일하게 규격화하려고 했다.

비급여를 통제하여 진료비를 균일화하고, 진료의 질을 표준화하고, 동일한 진료 결과를 담보하겠다는 보편적 의료 정책을 강조해왔지만, 국민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정서와 반대되는 것으로 이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또, 관리 대책은 비급여 증가로 인한 문제점들을 기술하고 있지만, 비급여가 증가하는 원인과 인식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 보인다. 비급여 규모와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므로 비급여 증가 여부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를 인정한다고 하여도 비급여가 증가하는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민 의료비 규모와 관계가 있으며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나라의 의료비 비중을 비교한다면 추론할 수 있다.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全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 의료비는 저렴하고 접근성이 뛰어나다. 이는 정책의 성공이 아니라 의사들의 강요된 희생의 결과로, 이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 비급여가 등장한다. 비급여는 청산되어야할 적폐가 아니고, 惡하지만 어쩔 수 없는 必要惡도 아니며,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만든 필연의 결과물로서 정부가 그렇게 만들어온 것이다.

이번 상상력에 근거한 관리 대책은 비급여 진료 사전설명제도 도입, 비급여 진료평가 실시 및 활용, 실손보험과의 연계·협력강화 및 비급여관리 민·관 협력체계 강화 등 많은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계를 자극하고 충돌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부동산 시장의 실패가 의료에서도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상상력은 어리석은 자를 영리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행복하게는 만든다. 추종자들에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합리적 이성과는 반대로 상상력은 지지자들을 허상과 허울이라는 영광으로 감싸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그럴듯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물론 금방 벗겨져 버리겠지만 말이다. 지금 우리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의 결정체가 아니라 냉철한 인식과 이성과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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