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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낯선 한 해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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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낯선 한 해를 마무리하며
  • 병원신문
  • 승인 2020.12.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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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 간호사 손지윤
손지윤 간호사
손지윤 간호사

올해는 낯선 일들이 몰아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물결이 제게도 닿았는지, 난생 처음으로 성탄절을 기념하는 리스를 샀습니다. 동그란 리스 틀에 호랑가시나무 줄기가 빼곡히 엮여 있고 그 위에 빨간 열매들이 드문드문 얹혀있습니다.

벽에 걸어 놓으니 제법 연말 분위기가 납니다. 이번 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성탄절은 멋진 식당이나 여행지에서 보내게 될 줄 알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잠깐 지나갑니다. 작은 나무장식은 고된 한 해를 지치지 않고 견디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나에게 주는 작은 격려이자 선물입니다. 올 한 해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떤 고난이 있었나요?

겨울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올해 초, 저는 위기대응중환자실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대병원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이하 COVID-19) 확진자를 위한 격리병동을 이미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의료 기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파악한 병원은 타개책으로 '위기대응병동'을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이 중 하나가 위기대응 중환자실입니다.

그 때까지 소아중환자실에서만 경력을 쌓아온 저는 성인 대상자 간호에 대한 도전 반, '위기를 헤쳐 나가 빛을 발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 반으로 자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 계절이 지나 다시 겨울이 된 지금, 저는 여전히 위기대응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COVID-19 치료의 최전선에서 조금은 힘들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할 자긍심을 안은 채 일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전장과도 같은 이 곳에서 간호사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위기대응 중환자실 (이하 DICU, Disaster Intensive Care Unit)에서 간호사는 환자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먼저, 음압격리구역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구 착용을 점검합니다. 의료진은 물론이고 격리구역 내의 설비를 수리하기 위해 오신 기사님, 폐기물을 담당하는 환경관리원님도 점검의 대상이 됩니다.

격리구역에 체류하는 시간에 부합하는 보호구를 선택하도록 돕는 것 또한 간호사의 업무입니다. 단시간 업무에는 Level D와 N95 마스크로 구성된 'N95 set'를 장기간 업무에는 'PAPR (Powered Air Purifying Respirator, 전동식 공기 정화 호흡 보조구) set'를 입습니다.

N95 set의 경우 고글이나 마스크가 적절히 착용 되었는지, 손상된 곳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PAPR set의 경우에는 기기가 제대로 조립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필터는 단단히 끼워져 있는지, 머리에 쓰는 후드와 허리에 채워진 PAPR 본체가 튜브로 빈틈없이 연결되었는지 확인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음압격리구역 (오염구역)과 청결구역 사이에 물리적 거리를 두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전실'에만 출입하는 분들도 놓칠 수 없습니다. 덴탈 마스크로도 충분한지, 혹은 KF94 이상의 마스크가 필요한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간호사는 오염구역에서 배출되는 모든 것을 '단속'해야 합니다. '단속'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 치의 소홀함도 허용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물품들과 자료들이 오염구역과 청결구역을 오가기 때문입니다. 치료의 모든 과정이 병실에서 이루어진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으나, 보다 정밀하고 고도화된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병원 내외의 많은 자원들과의 교류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검체'입니다. 중환자실에서는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진단하기 위하여 수많은 검체를 채취하고 검사실로 보냅니다. 혈액, 객담, 소변, 대변, 흉수와 복수 등 많은 종류의 인체유래물을 검사하려면 오염구역을 나가기 전 여러 번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기관마다 상이하겠으나 저희 병동은 '(용기마다) 각각 밀봉 -> 소독 -> 밀봉 -> 소독 -> 밀봉 -> 소독'한 검체만이 병동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삼중 포장과 더불어, 취급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별도의 표기가 된 붉은 스티커를 붙여 인편으로 직접 검사실에 전달하는 것까지가 중환자실의 업무입니다.

시간이 소요되고 번거로운 과정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검체를 운송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검체를 다루는 검사실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업무들도 간호의 과정 중 하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환자를 간호하는 일은 여느 중환자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호사의 경우 격리구역에 체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PAPR set를 입고 근무하는 것이 육체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허리에 착용하는 PAPR 본체는 2~3kg 가량으로 오래 입고 있으면 허리가 뻐근해지는 것은 물론, 근골격계 질병을 얻어 병가를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기계로 인한 소음이 머리에 쓴 후드 안을 맴돌아 바깥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긴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큰 목소리로 말하다 보니 목이 쉬기도 합니다. 또한 전신 보호복 때문에 안에 입은 작업복이 땀으로 모두 젖기도 하고, 늘 두 겹의 장갑을 착용하고 일하는 탓에 손과 손톱이 땀으로 약해져 갈라지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가 힘들기는 하지만, 저는 지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쳐서도 안 됩니다.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환자의 가장 가까운 곳을 지키는 간호사이기 때문입니다. 격리구역에 있는 동안 짧으면 수일, 길면 수개월을 환자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가족들 또한 저희를 믿기에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지칠 수 없습니다. 어려운 근무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는 동료들과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호전되는 환자들과의 대화에서 보람을 찾으며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어느 덧 전쟁 같았던, 혹은 전쟁이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불편하고 귀찮은 일 년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과 같은 시간으로 기억되겠지요.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이 위기도 언젠가는 마무리되고 고생한 서로를 도닥일 시간이 오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제가 산 리스의 재료인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을 검색해 보니 '행복과 평화'라고 합니다. 행복과 평화가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 낯설고 두려운 시간들을 버티고 있는 모두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격려를 아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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