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국경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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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국경의 남쪽
  • 윤종원
  • 승인 2006.04.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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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 가로막은 사랑, 국경의 남쪽

차승원은 "국경의 남쪽"(감독 안판석, 제작 싸이더스FNH)이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 영화"라는 홍보 카피가 부담스러운 듯했다. 뚜껑이 열리기 전 몇 차례 마련된 자리에서 "그저 한 사람의 스토리인데 이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이 사랑인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니 휴먼 스토리일 것. 그렇다 해도 "국경의 남쪽"은 "차승원의 첫 멜로 영화"라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다. 개인통산 관객 동원 2천만명을 넘어선 것에서 알 수 있듯 차승원은 관객에게 결코 실망하지 않는 재미를 줘왔다.

코미디 전문 배우로 굳혀가나 싶을 때 "혈의 누" "박수칠 때 떠나라"를 선택해 연기 폭이 만만치 않음을 드러냈다. "국경의 남쪽"은 배우 차승원의 존재감을 새삼확인시키는 영화다.

지금까지 나온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현실적이며 소박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북에 두고 온 연인을 못잊어하는 탈북 청년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남측 여자와 결혼하지만 뒤늦게 자신을 찾아 목숨 걸고 내려온 연인을 보며 가슴 찢기는 고통을 겪는다.

"장미와 콩나물"로 차승원을 만났고, "아줌마" "현정아 사랑해" 등 히트 드라마를 만들었던 스타 PD 출신 안판석 감독은 욕심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첫 영화를 풀어나갔다.

흔히 "영화적"이라고 표현되는 극적인 감정의 동요를 쫓아가기보다는 북한 사람 역시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기뻐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만수대 예술단 호른 주자 김선호(차승원)는 인민해방전쟁에서 장렬히 전사한 할아버지를 둔 덕에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산다. 그에게는 "국사발에 네 얼굴이 동동 뜨니 그 얼굴만 쳐다보다 국이 다 식어버린다 야"라고 말할 만큼 사랑하는 연화(조이진)가 있다.

모내기 전투에 나가기 전 결혼식을 올리고 싶을 만큼 행복한 선호에게 느닷없이 북한을 떠나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죽은 줄만 알았던 할아버지가 실은 남한에 살고 있으며 비밀리에 편지를 부쳐온 것.

선호는 반드시 연화 가족이 탈북할 자금을 보내주기로 약속하며 생이별을 한다. 선호네 가족은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하고, 선호는 정착금을 몽땅 털어 연화 가족을 오게 하려 하지만 사기꾼에게 걸린다.

피땀 흘려 돈을 버는 선호는 우연히 만난 치킨집 억척사장 경주(심혜진)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경주와 결혼한다. 북에 있는 연화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경주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가운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연화가 자신을 찾아 북한을 떠나 남한에 도착했다는 것. 연화를 다시 만난 선호는 연화를 향한 사랑이 여전히 변함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더욱 참담해진다.

분단이 낳은 사랑의 비극. 선호와 연화의 애타는 사랑 앞에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북한 사람은 왠지 꺼리는 남한의 정서가 부끄러워진다.

생생히 재현되는 북한의 풍광은 "국경의 북쪽"에 같은 민족이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한다. 놀이공원과 옥류관에서의 데이트, 닭살 돋는 사랑 고백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디서나 사랑이 피어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운다.

착하고 결 고운 영화이지만 드라마틱한 화면에 익숙한 관객에게 반복되는 영상과 지극히 현실적인 설명식 화면은 군더더기로 느껴질 법하다. 영화가 풀어내는 정직함을 알고 있음에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태풍태양"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조이진의 연기는 차승원과 또 다른 맛을 준다. 싱싱한 사과를 먹음직스럽게 깎아놓은 듯 조이진은 고정관념을 깬 씩씩하고 어여쁜 북한 여자를 표현해냈다.

"거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것,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영화 "타이타닉"중 한 대사의 감동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둔 채 오늘도 목숨 걸고 휴전선을 넘고 있는 "국경의 북쪽"은 더 절실한 의미로 다가와야 한다는 걸, "국경의 남쪽"이 말하고자 한다.

5월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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