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망자 10명 중 3명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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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망자 10명 중 3명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 최관식 기자
  • 승인 2020.09.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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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연구원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시행 후 1년 데이터 분석
환자 참여 기회 확대 위해 한국형 의사-환자 공유의사결정 모델 제시

암사망자 10명 중 약 3명이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미만 중년층 암환자들의 ‘자기결정’ 비율이 높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한광협, 이하 보의연)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시행 후 국민건강보험공단 및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1년간 데이터를 분석한 ‘연명의료중단 현황 파악 및 한국형 의사-환자 공유의사결정 모델 탐색’ 연구 결과를 9월 21일 발표했다.

2018년 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1년간 암사망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체 성인 암 사망자는 총 54,635명이었으며, 이 중 연명의료결정 암사망자는 14,438명으로 26.4%를 차지했다.

연명의료결정이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가족진술 △가족전원 합의 중 1가지의 서류를 통해 연명의료를 유보 혹은 중단하는 것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연령대별로는 65세 미만 암사망자 16,143명 중 33.9%에 해당하는 5,470명이, 65세 이상 암사망자 38,492명 중 8,968명(23.3%)이 연명의료결정 사망자로 65세 미만의 연명의료결정 비율이 10%p 이상 높았다.

연명의료결정을 선택한 주체는 분석에 적합한 13,485명 중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 유보 및 중단에 대한 결정 의사를 밝힌 경우(자기결정)가 7,078명(52.5%)으로 가족작성에 의한 6,407명(47.5%)보다 더 많았다.

자기결정 비율은 40대와 50대에서 60~68%로 나타났고, 나머지 연령에서는 최소 34%, 최대 58%의 비율을 차지해 40~50대 중년에서의 자기결정 의사가 가장 뚜렷했다.

자기결정 암사망자들은 호스피스 병동 이용빈도가 가족작성 암사망자들보다 더 높았다. 자기결정에서는 42%, 가족작성에서는 14%가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했다.

반면 중환자실은 자기결정 13%, 가족작성 33%였고 응급실도 각각 77%와 82%로 가족작성 암사망자에서 이용빈도가 더 높았다.

보의연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연명의료시스템 데이터도 분석, 암환자뿐 아니라 비암환자도 포함한 연명의료결정 현황도 확인했다.

2018년 2월부터 2019년 1월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명의료계획서, 가족진술서, 가족전원합의서 중 한 가지를 작성한 33,794명 중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10,791명으로 31.9%였다. 나머지는 가족진술서 혹은 가족전원합의서를 작성한 경우로, 연명의료결정이 가족에 의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암환자와 비암환자로 구분해 살펴보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비율이 암환자는 48.4%로 절반정도를 차지했으나 비암환자에서는 14.1%에 불과했다. 비암의 경우 말기 여부의 판단이 어렵고,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 임종기로의 진입이 너무 빠르게 진행돼 환자가 직접 의사를 표명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연명의료결정의 대부분은 상급종합병원(44.2%)에서 이뤄졌으며 종합병원이 21.8%, 병원이 1.8%, 요양병원은 0.3%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환자가 노인인 요양병원에서의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것은 아직까지 연명의료결정 제도가 윤리위원회 설치 또는 의료진과 환자 교육 등의 문제로 병·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의 운영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책임자인 세종충남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권정혜 교수는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일반인과 환자들의 대다수는 연명의료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고 보고되고 있으나, 이번 연구 결과 현실에서는 암사망자 10명 중 2.6명 만이 연명의료결정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윤리위원회 운영의 어려움, 연명의료시스템의 접근 문제, 복잡한 서식과 교육 부족 등이 장애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연명의료 유보 및 중단을 결정하고 서식을 완성한 말기암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하고, 의사들을 대상으로 연명의료 결정시의 공유의사결정에 대한 현황도 파악했다.

심층면접을 통해 확인한 결과, 환자들은 연명의료결정과 관련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나 주변을 생각했을 때 옳은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보호자들은 이러한 환자들의 생각과 의중을 유추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또 7개 상급종합병원에 소속된 총 202명의 전공의와 전임의,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명의료결정과정에서 공유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 의사 수는 총 77명(38.1%)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공유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제도적 측면에서 진료시간의 압박(112명)을 가장 많이 꼽았고, 환자 측 요인으로는 가족의 비현실적인 기대(78명)와 결정시기의 애매함(67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의사측 요인으로는 필요한 교육 자료나 결정도움 도구가 없음(46명)이 이유로 나타났는데 실제로 공유의사결정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47명으로 전체의 23.4%에 불과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연명의료에 대한 공유의사결정의 확대를 위해 한국형 의사결정 단계인 SEEDS 모델도 제안했다.

SEEDS 모델은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신장내과 신성준 교수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아니타 호 교수가 공동개발한 SEED 모델을 발전시킨 것으로, Seek(준비)-Engage(참여)-Explore(탐색)-Decide(결정)-Support(지지) 5단계로 이뤄진다.

준비단계는 연명의료 및 공유의사결정과 관련된 사항을 공유해 정하는 과정을 말하고, 참여단계는 연명의료결정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탐색단계는 환자에게 적용 가능하면서 가장 적합한 옵션들을 찾아보는 것을 말한다. 결정단계는 앞서 논의된 여러 옵션들 중 택일하는 과정을 말하며 마지막 지지단계는 결정 이후, 혹은 공유의사결정 각 단계에서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돌봄과 지지가 필요함을 뜻한다.

공동 연구책임자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신장내과 신성준 교수는 “SEEDS 모델은 심층적이고 단계적인 의사소통으로 연명의료결정 과정에서 환자의 가치를 존중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면서 “특히 마지막 지지단계는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과정으로 많은 의료진들에게 연명의료결정 과정에서의의 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의연 한광협 원장은 “연명의료결정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찰과 분석,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연구가 그 정착 과정에서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보의연은 앞으로도 연명의료와 같은 사회적 합의와 가치판단이 필요한 분야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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