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도마뱀
상태바
영화 - 도마뱀
  • 윤종원
  • 승인 2006.04.19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엉뚱녀 순진남의 사랑, 도마뱀

영화 "도마뱀"은 제작 당시 실제 연인 강혜정과 조승우의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러나 단언컨대 영화를 본다면 보는 내내 현실의 연인 강혜정-조승우가 아닌, "도마뱀"의 연인 아리와 조강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도마뱀"(감독 강지은, 제작 영화사 아침)이 "너는 내 운명" 이후 모처럼 볼 만한 멜로 영화로 등장했다. 두 영화가 무엇보다 내세울 수 있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

30대 배우 중 연기 잘하는 배우로 꼽히는 전도연과 황정민이 "너는 내 운명"의 현실감을 생생히 전했다면, 20대 배우 중 벌써부터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해가고 있다는 평을 듣는 강혜정과 조승우는 사랑의 판타지를 부드러운 감촉으로 전하고 있다.

강지은 감독은 오로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두 배우가 "치열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배우들이 스스로 감정을 뽑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하다.

또한 감독은 여백의 미를 살린 화면 구도를 통해 미학적 감각도 드러냈다. 담백한 수채화 같은 구도에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을 수놓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영화사 아침의 창립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정승혜 대표는 이 시나리오를 고른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독특해서"라고 표현했다. 자신을 외계인이라 생각하는 소녀와 소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소년. 단 세 차례(횟수가 아닌 기회) 만났음에도 순정을 유지하는 두 남녀다.

햇살이 눈부신 가을날 노란 비옷을 입은 소녀 아리가 전학온다. 소년 조강은 마치 물에 젖은 손으로 건전지를 만졌을 때 같은 찌릿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은 외계인이며,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그 저주가 퍼지지 않도록 비옷을 입는다는 소녀.

아리는 작은 도마뱀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 옛날 도마뱀이 지구를 지배한 적이 있어 인간이 도마뱀을 징그러워 한다는 등 또래들에게 먹히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다.

자신의 몸을 만지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아리. 아리를 때린 선생님이 부상하면서 아리는 아이들에게 공포스런 존재가 된다. 그런 아리를 온몸으로 지켜주는 조강.

조강이 이사를 가면서 첫번째 만남이 끝난다. 딱 10년 후 고등학교 2학년생이 된 조강에게 아리가 난데없이 연락하며 두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아리가 살고 있는 암자에 조강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내려온다.

아리의 거짓말은 여전하다. "깐 콩깍지가 더 좋니, 안깐 콩깍지가 더 좋니?"를 영어로 능숙하게 말하는 아리는 자신의 영어 실력이 미군 귀신 때문에 좋아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풋사랑의 감정을 풋풋하게 전하는 어린 연인의 모습은 정겹다.

그리고 또 아리는 사라진다. 두번째 만남에서 아리가 "잘생긴 은행원"과 결혼하고 싶다던 말에 조강은 진짜 은행원이 된다. 조강이 5년째 흥신소에 부탁해도 찾아지지 않던 아리는 어느 날 조강 앞에 등장한다. 아리가 또 다시 사라질까봐 구두끈으로 아리의 발을 의자 다리에 묶어놓을 만큼 조강은 두렵다.

"내일 데이트를 하자"는 조강의 말에 아리는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난다"고 답한다. 공항의 이별. 아리는 어렸을 때처럼 노란 선 밖으로 나오지 말라며 조강을 남겨둔다.

그러나 아리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뒤늦게 아리의 병을 안 조강의 안타까운 사랑. 조강은 아리를 위해 메밀밭에 외계인이 착륙할 수 있도록 미스터리 서클을 만든다.

장면 장면이 참 아스라하다. 있을 수 있는 사랑,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이 펼쳐진다. 두 사람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은 단 한 장면뿐. 그럼에도 관객에게는 두 사람이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하는지 느껴진다. 마지막 이별 장면의 몽환적 분위기는 영화를 신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에필로그에서 조강은 "사랑은 기억"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그리고 사랑을 기억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라고 되뇐다.

아리와 조강이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만큼 깨끗하고 감동적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운명 같은 만남-사랑-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내세우는 뻔한 공식의 멜로 영화는 배우의 이름이 아니라 순수한 영화 속 캐릭터로 기억돼야 함을 "도마뱀"은 내세운다.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