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유효성 검증 없는 첩약 급여화는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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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유효성 검증 없는 첩약 급여화는 위법”
  • 박해성 기자
  • 승인 2020.07.0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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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단체, 간담회서 정부 시범사업 관련 반대 입장 천명
약리학적·법리학적·사회학적 관점 등에서 논란 소지

안전성·유효성 검증 없는 첩약 급여 시범사업을 강행하려는 정부에 대해 의약단체가 한 목소리로 이를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정영호),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대한의학회(회장 장성구), 대한약사회(회장 김대업)는 7월 8일 오후 2시 광화문 버텍스코리아 22층 중회의장에서 ‘첩약 급여화, 선결과제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온라인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부가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월경통 등 3개 질환에 대한 한방 첩약급여 시범사업을 강행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건정심 본회의를 앞두고 있어 의약 4단체가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검토하고자 긴급하게 간담회를 마련한 것.

본격적인 간담회를 앞두고 우선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회장과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인사말을 전했다.

정영호 병협회장은 “건강보험 적용 확대는 기본적으로 의학적 타당성과 의료적 중대성, 치료의 효과성, 비용의 효과성에 근거해야 하는 것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계가 한방의 과학화와 보장성 강화를 위해 의료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지속해왔으나 이 같은 선결과제 없이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것에는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냉정한 판단의 기준이 제시돼 합리적 정책이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비과학적인 한방 첩약의 급여화에 대해 의협은 결의대회 등을 통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천명해왔다”며 “정부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병원들과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지원에 힘써도 모자랄 판에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7월 24일로 예정된 건정심 본회의에서 이번 안건이 통과된다면 13만 의사들은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 경고했다.

병원협회 이왕준 국제위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는 첩약 급여 시범사업에 대한 약리학적·법리학적·사회학적 관점에서의 문제점이 불거졌다.

이형기 서울의대 임상약리학 교수는 약리학적 관점에서 주제발표에 나서서 “의약품이 적정성 평가를 통과해 급여화되기까지는 안전성·유효성 심사는 기본이고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하지만 한약은 품질 규격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첩약 또한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를 급여화하는 것은 특정 직역만을 선택적으로 육성하는 공정하지 못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의약품에서 기본이 되는 완제 품질관리, 경제성 평가, 시판 후 안정성 평가 없는 첩약의 급여화는 오히려 한의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일”이라며 “한정된 자원을 꼭 필요한 것에 써야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라고 덧붙였다.

법리학적·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를 바라본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는 “첩약이라는 비과학적인 의료행위에 대한 경제성 평가도 없이 시범사업을 시행하면 급격한 보험료(치료비) 증가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의학은 과학에 기반해야 하는데 한의학에만 별도의 기준을 허용하는 순간 과학화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얘기했다.

더불어 “비용 효과성을 따지려면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와 같은 의학적 검증이 선행돼야 하지만 복지부는 이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며 “의료와 한방의료에서 별도의 기준이 존재할 수 없음에도 복지부가 하위법령에 자의적으로 현실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법리적 관점에서 위배되는 행위”라고 역설했다.

의약 4대 단체를 대표해 나온 패널들은 이어진 토론에서 하나 같이 정부의 절차상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에서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일관된 프로세스가 아닌 특수성을 인정한 특혜적 프로세스를 가져간다는 것은 누가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라며 “시범사업 내에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지만 과연 정부가 이를 강행할 정도로 한약의 급여화가 과연 급한 것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좌석훈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첩약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음에도 안전성·유효성 검증이라는 선결과제 없이 밀어붙이는 정부의 편향적인 입장은 큰 문제이다”라며 “정부 정책이 한약 육성이 아닌 한의사 육성쪽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명수 대한의학회 보험이사는 “대한의학회는 186개 의학학술단체 대표로서 정부의 시범사업에 반대함을 천명한다”며 “의료에서 필수적이며 최소한의 전제인 과학적 근거 검증 없이 이를 강행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종윤 대한병원협회 기획정책본부장은 “건보 재정의 한계로 인해 필수적이지만 급여화되지 못한 의약품들도 많은데 연간 5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가지 질환의 첩약 급여화가 그렇게 급한 일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정말 필요하다면 모니터링 기준을 우선 마련하고 비급여 차원에서 진행하면 될 일”이라고 언급했다.

좌장을 맡은 이왕준 위원장은 자리를 마무리하며 “첩약 관련 임상약학적 근거는 파급효과를 엄격히 논의해왔던 기존의 과정과 비교했을때 정말 어불성설이다”라며 “이번 문제가 의사와 한의사의 영역 다툼으로 비춰지며 본질이 묻혀져서는 안된다. 이는 복지부의 정책조정 기능이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사회가 인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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