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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과거 우리나라 신종 감염병 대응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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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과거 우리나라 신종 감염병 대응 어땠나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0.04.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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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한류' 배경은 과거 성공과 실패 노하우에 기반
실종플루, 메르스 등 겪으며 소통 확대로 위기 넘겨

최근 코로나19 대응을 두고 전 세계 언론들이 연일 한국의 대응 방식의 우수성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우리나라의 방역 전략을 묻고 도움을 받기 위해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정도다.

특히 많은 국가들이 한국의 진단키트 등 방역 물자 지원을 요청하는 등 바야흐로 방역에 있어서는 ‘방역 한류’가 불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한국이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대응에 있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H1N1·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ERS corona virus) 등 감염병 대응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참여정부 시절 사스부터 박근혜 정부 당시 메르스까지 우리나라가 걸어온 감염병 대응 정책을 살펴본다.

WHO(세계보건기구)도 인정한 ‘사스’ 예방국

지난 2002년 11월 당시 정부는 전국에 방역강화지침을 시달하고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3월 16일 WHO(세계보건기구)가 전 세계 사스 경계령 발표하자 우리나라 정부도 사스 경보를 발령하고 방역시스템을 총 가동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총리가 직접 사스 대응을 지휘하고 정부종합상황실을 출범시켜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시작했다.

정부는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13개 국립검역소, 16개 시·도 및 242개 보건소 등 전국 모든 보건기관이 24시간 비상근무체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또 전국 권역별 격리치료병원 41개소에 총 138병상을 확보해 조기발견 및 치료 방역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해외에서의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 공항과 항만을 통해 중국 광저우 등 위험 지역에서 입국자를 대상으로 발열검사, 검역설문 등을 실시했으며 사스위험 지역 입국자에 대한 추적조사를 벌여 감염의심자가 발견되면 즉시 후송·격리 및 치료 시스템과 접촉자 추가격리 조치 등 사스 유입 및 확산차단 대책을 세웠다.

장장 114일간의 사스 비상방역 근무 기간 중 전국 242개 보건소에서 총 23만명에 대한 위험지역 입국자 추적조사를 입국 후 5일째부터 전화를 통해 실시하고 전국 13개 검역소에서는 5400여대의 항공기 및 탑승객 62만명, 1만 척의 선박과 탑승객 28만명을 대상으로 사스관련 검역을 진행했다.

이같은 조치로 2003년 7월 7일 우리나라 사스 방역 상황을 종료할 때까지 추정환자 3명과 의심환자 17명 등 총 20명의 환자가 발생했지만 확진 환자는 1명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방역능력을 보여줘 WHO는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사스에 대처한 나라로 꼽았다.

당시 환자 접촉자 등 2200여명이 자택에 격리됐으며 ‘1339’ 응급의료상담전화를 통해 3300여건의 사스 상담이 이뤄졌다. 총 120여회의 보도자료 배포 및 190여회의 브리핑이 실시됐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참여정부는 2004년 국립보건원을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하고 검역과 방역 기능을 통합했으며 이후 전염병 유행시 질병관리 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화했다.

또 NSC에 위기관리센터가 대응해야 하는 33개 국가 위기 유형에 전염병을 포함하고 표준매뉴얼과 실무매뉴얼을 제작했다.

‘신종플루’ 신속 대응 했지만…사망자 41명 기록

이명박 정부 당시 유행한 신종플루는 초기 대응에는 선방했지만 결국에는 76만여명의 감염자와 41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다행스럽게도 치료제로 타미플루가 출시되면서 더 이상의 감염확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09년 3월 미국에서 신종플루가 최초 발병하자 정부는 4월 보건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출범시켜 대응에 나섰다. 초기 정부는 검역, 환자격리 등의 ‘봉쇄정책’을 통해 지역사회로 신종플루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데 초점을 뒀다.

신종플루가 발생하자 정부는 2009년 4월 28일 국가 재난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 조정하고 5월 1일 보건복지가족부에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본부장 장관)’를 설치했으며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 인천공항검역소 등을 24시간 근무체계로 전환했다. 또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일일 상황 점검체계를 가동했다.

4월 27일부터 전체 공항 입국자로 발열감시 대상을 확대하고 확진환자 발생국가 항공기 검역을 강화(2010년 2월 4일까지 1157만명에 대해 발열검사 실시)했다. 5월 2일부터 위험지역 입국자에 대한 전화 추적조사를 실시(7월 26일까지 외국인 포함 76만명)하고 확진환자로 확인된 승객과 동일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에 대해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또 출·입국자를 대상으로 건강관리안내문 배포, 기내방송 및 휴대전화문자서비스 등을 실시했으며 입국 후 급성열성호흡기질환 발생시 자발적 신고를 홍보했다.

또한 TV·라디오, SMS, 지하철, 인터넷, 전광판 등을 활용해 일반 국민에게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행동요령을 전파했다. 그리고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추정·확진 환자에 대해 의료기관 격리를 실시하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했다. 초기에는 국가지정격리병원에 격리하였으며, 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거점병원 등 일반 의료기관으로 격리기관을 확대했다.

이외에도 지역사회에서 신종플루를 조기 인지하기 위해 학교와 의료기관 등을 중심으로 급성열성호흡기질환 일일 능동감시를 실시했다.

그러나 2009년 7월 이후 지역사회 감염사례가 확인되고 학교 등에서 유행이 발생함에 따라 7월 21일 국가위가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정부의 대응 방향을 기존의 전파차단에서 선제적 항바이러스제 투여와 예방접종 등의 ‘피해최소화’ 정책으로 선회하여 사망을 예방하고 사회기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정부는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확대 개편(4개팀 19명→5개팀 29명)하여 교육과학기술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노동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을 파견하고 시·도와 시·군·구에도 인플루엔자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또한 보건복지가족부 차관과 의료계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 등 6개 단체장과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신종인플루엔자 대책위원회’를 8월 28일 구성했다.

11월 3일 국가위기단계가 ‘심각’으로 조정됨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범정부적 총력대응체계로 전환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상황총괄관리, 관련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대응 조정 등을 담당하고 보건복지가족부는 항바이러스제 보급, 예방접종 등 의료적 대응을 담당했다. 시·도 및 시·군·구에도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도록 했다.

폐렴 등 중증환자나 사망자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급성열성호흡기질환자에게 진단검사 없이 의사의 임상적 진단만으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도록 항바이러스제 투여 지침을 개정했으며 해외여행력이나 환자접촉력 등 역학적 연관성이 없는 환자에서도 증상에 따라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확진자 등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강제격리에서 ‘자가치료 및 외출자제’로 정책을 변경해 경증의 환자들이 자가치료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항바이러스제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항바이러스제 투약관리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아울러 충분한 항바이러스제 공급을 위해 추경예산과 예비비 등을 편성하여 1,369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구매했다.

특히 정부는 신종플루 유행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대규모 예방접종필요하다고 보고 10월 21일 성인 백신 허가가 나자 27일부터 의료인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해 11월 4일 소아 백신 허가 후 11일부터 학생에 대한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이후 12월 7일 임신부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이 단계적으로 실시됐고 2010년 1월 4일 면역증강제 백신의 허가 이후에는 만성질환자, 건강한 노인에 대한 접종이 이뤄졌다.

예방접종을 시작한 이후 급속히 환자가 감소했고 2월 11일 위기단계를 경계단계로 낮추고 2월 중순부터 예방접종 대상자를 확대해 2010년 3월 31일까지 총 1,227만명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환자 수가 감소하고 항바이러스제 사용량이 감소함에 따라 정부는 2010년 3월 8일 국가위기단계를 경계에서 주의로 다시 환원하고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해체하고 질병관리본부 신종인플루엔자 방역대책본부 체제로 환원했으며 위기단계를 다시 관심으로 하향 조정하고 3월 31일 신종인플루엔자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지역신종인플루엔자대책반을 종료했다.

우왕좌왕하다 사태만 키운 메르스 대응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6개월간 168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38명이 사망한 ‘메르스’ 대응은 실패한 방역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 대응과 사스, 신종플루 당시와 비교가 많이 되기 때문이다. 사스와 신종플루 당시 정부는 외국에서 발생한 사스와 신종플루로 인한 대규모의 환자 및 사망자 발생을 경계해 공항과 항만에서 국경 검역을 최우선적으로 조치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실제 검역 과정에서 의심환자를 찾아내고 격리 조치하는 등 방역활동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2015년 메르스 사태는 2012년 이후 중동지역에서 3년간 1천54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 역시 456명에 달하는 등 치명률이 약 40%에 달하는 감염병이고 치료제와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동지역을 다녀온 환자로 많은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역시 단기간 내에 급격히 증가하는 등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정부의 방역활동을 불신하게 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15년 5월 20일 메르스 첫 환자가 확진된 이후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규정된 바와 같이 감염병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 또 중앙방역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중동지역 입국자를 대상으로 검역을 강화했으며 국립보건연구원에 24시간 메르스 전담 검사반을 운영했다.

그러나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첫 환자와 접촉해 감염 가능성이 있는 모든 밀접 접촉자를 파악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최초 환자가 진료를 받았던 4곳의 의료기관과 이들 의료기관 내에서의 밀접 접촉자들에 대한 파악 및 전면적인 역학조사와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 격리조치를 시행하지 못했다.

방역 당국의 예상과 달리 6번 환자는 1번 환자와 동일 병실에 입원하지 않았지만 5월 28일 메르스로 확진됐고 이후에도 추가 확진자가 계속 발생했다. 이 외에도 3번 환자의 딸이 5월 20일 발열 증상이 없어 격리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수일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의심증상이 있는 환자들이 누락되고 이들로 인해 연쇄적인 3차, 4차 접촉이 발생해 여러 의료기관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특히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동일 병동에 입원했던 35세 남성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서 폐렴증상으로 응급실에서 입원진료를 받아 많은 환자에게 감염을 일으켜 슈퍼 전파자로 지목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삼성서울병원 90명, 평택성모병원 37명, 대청병원 14명, 건양대병원 11명, 동탄성심병원 6명, 강동경희대병원 5명, 평택굿모닝병원 4명 등 총 186명의 환자가 발생하게 됐다.

이에 복지부는 5월 28일 감염병 위기관리대책위원회를 개최하고 메르스 대응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새로운 대응조직으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복지부가 대응 업무 전반을 총괄했으며 질본은 검역, 역학조사와 진단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또 감염병과 질병 역학 관련 민간전문가를 활용해 역학조사 과정을 재검토하고 대응 매뉴얼과 각종 지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며 메르스 대응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마련하도록 범부처가 지원하도록 했다.

특히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확대·개편해 6월 4일 병원 내 감염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종합대응TF를 구성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지시에 따라 즉각대응팀을 6월 8일에 조직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의 역학조사반(팀)은 대한예방의학회 산하에 중앙 민간역학조사지원단을 두고 시·도 단위로 민간역학조사지원반을 구성했다.

6월 3일부터는 범정부적인 지원을 위해 11개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된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를 가동하기 시작하고 국민안전처 장관이 본부장을 맡았다.

또한 5월 말부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메르스 관련 괴담이 급속히 유포되자 정부는 트위터와 SNS 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6월 1일부터 정례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러나 확진환자 발생·경유 의료기관명 공개와 같이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적시에 대응을 하지 못해 국민의 불신이 높아져 기존의 위기 소통 방식의 대응 한계가 노출됐다.

6월 중순 이후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전담팀을 신설하고 처음 13개 병원을 집중관리병원으로 지정했으며 이후 3개 병원을 추가했다.

집중관리병원에는 즉각대응팀과 즉각이행팀이 파견돼 역학조사에 기반을 둔 감염경로 차단과 격리자 통제 등의 작업을 수행했다. 환자 발생과 병원 여건에 따라 병원 폐쇄 유형과 격리 방식 등에 차이가 있었으며 격리 조치에는 코호트 격리와 1인 격리 등이 활용됐다. 지속적인 의료진 감염 문제 발생에 따라 삼성서울병원에 있던 메르스 확진환자는 음압격리병실이 있는 국공립병원으로 이송시켰다.

한편, 메르스로 인한 의료기관 등의 손실보상금은 총 1781억원으로 확정하고 의료기관 176곳, 약국·상점 57곳을 대상으로 보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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