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속도 조절해 병원계 대응력 높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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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속도 조절해 병원계 대응력 높이겠다
  • 최관식 기자
  • 승인 2020.01.0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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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강원 권역 기관장 간담회에서 보건복지부 관계자 밝혀
정부 “의료인력난, 전달체계 등 정책에 현장 목소리 충분히 반영”

의료인력난과 의료전달체계 개편, 지방병원 경영난 등 보건의료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병원계가 수 차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는 지난해 연말 대전·충청과 경기·인천 권역에 이어 1월7일 오후 대구 효성병원 별관 회의실에서 대구·경북·강원 권역 기관장 간담회를 갖고 보건의료 분야 현안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했다.

병원 현장의 살아있는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정부와 병원협회가 주선한 이 간담회에서 참석 병원장들은 병원 경영 과정에서의 고충과 해결방안에 대한 대안 제시는 물론이고 보건의료 발전과 지속가능한 의료전달체계 수립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병원장들은 현안 해결 및 보장성 강화를 위해 도입된 정책이 선의의 취지와 달리 실제 의료현장에서 더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키는 수많은 사례들을 예로 들며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에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정책 당국자들은 병원계가 충분히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병원계에서 고삼규 대구경북병원회장(보광병원장)과 이승준 강원도병원회장(강원대병원장)을 비롯해 허동명 대구경북병원회 부회장(대구파티마병원 의무원장), 김상규 대구경북병원회 총무(푸른병원장),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조치흠 계명대 동산병원장,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장, 김병국 구미차병원장, 김문철 에스포항병원 대표원장, 김지건 삼일병원장, 김장영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기획조정실장, 김호일 안동의료원 행정처장, 박병규 효성병원 산부인과 교수,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또 정부 측에서는 김헌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을 비롯해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과장, 손호준 의료자원정책과장, 김옥수 보건의료정책과 사무관, 김성철 공공의료과 사무관이 참석했다.

고삼규 회장은 간담회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먼 곳까지 중앙부처 국·과장님들이 직접 찾아와 병원계 현안에 귀를 기울여줘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비가 오고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드는 날 먼 곳까지 달려와 주신 보건복지부 관계자와 병원장님들께 감사드린다”며 “최근 의료정책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방향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감당하기 어려운 가운데 오늘 이 자리에서 혜안들이 쏟아져 방향성과 속도 조절의 묘수를 찾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헌주 보건의료정책관은 “일선 병원들의 어려움에 대해 가급적 많은 얘기를 듣고자 한다”며 “이 자리에서 바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한다면 정책의 수용성이 더 높아짐은 물론 국민건강 증진과 보건의료 발전에 기여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 정책관은 “병원계가 어렵다는 것을 권역별 간담회를 통해 듣고 알게 됐다”며 “올 상반기 내에 의료전달체계, 의료인력, 병상수에 대한 행정부 권한 강화에 따른 계획,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만큼 의견을 충분히 주시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성철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 사무관은 간담회에 앞서 브리핑을 통해 현재 지역에는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사인력 등 의료자원이 서울·수도권에 비해 크게 부족하며 지역 내 보건의료 협력체계도 미흡한 만큼 정부는 지역별 주민들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자원 지정·육성과 지역의료기관 간 협력 거버넌스 구축, ‘중진료권’ 단위 정책관리 등의 해결책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역의료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해 지역우수병원 육성 및 전문병원 활성화, 농어촌 등 취약지 지역가산 수가를 검토하고 민간병원 자생이 어려운 곳은 공공병원 신·증축 및 기능보강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관은 또 “취약지 간호인력 인건비 지원 사업 대상 지역과 기관을 현재보다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진 간담회에서 A대학병원장은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려면 경증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보험 혜택을 주지 않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 이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의료전달체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비용차별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정책이 수시로 바뀌면서 일선에서 일일이 대응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며, 내과 수련기간이 3년제로 바뀌면서 내과 레지던트가 부족해 지금은 교수들이 당직을 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1·2차 병원의 의사 급여가 높아 대학병원에서 파격적인 급여를 제안해도 의사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며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도입도 꿈같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A병원장은 “3차의료기관에 환자가 그리 많이 필요없다”며 “우리는 급성기와 중증환자만 진료하길 원하며, 심지어 우리 병원 직원들도 1·2차 의료기관에 가서 진료를 보라고 권장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립대병원 B병원장은 “국립대병원에 대해 국가의 비용 보전이 많은줄 알지만 연간 예산의 2% 수준에 그친다”며 “상급종합병원 병원비를 올리면 돈 많은 사람만 이용할 것 아니냐는 논리에 부딪히겠지만 경증환자에 대해 본인부담을 높이면 확실히 환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방약을 3개월 혹은 6개월치씩 준다는 것 때문에 상종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본인이 체감할 정도로 본인부담액을 높이면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이용 과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B병원장은 또 인구는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더 많지만 병상수와 의료인, 전공의는 수도권이 더 많다며, 그 배경에는 대형병원이 펠로우 자원을 확대하면서 의료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탓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C병원장은 정부가 전문병원의 포지션을 확실히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정부가 연간 70억원만 투자하면 중증 화상환자 100명을 살릴 수 있다”며 정부의 역할이 이런 부분에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국립대병원장인 D병원장은 “국립대병원에서 발생하는 적자의 대부분은 어린이병원에서 발생한다”며 “적어도 이 부분은 정부가 맡아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D병원장은 병원의 적자가 심해 외부컨설팅을 받은 결과 지역암센터와 권역심뇌혈관센터 등의 운영을 일부 통합하는 등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가 있었으나 규정에 묶여 있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며 각 의료기관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E병원 관계자도 신생아중환자실의 병상가동률이 평균 60%에 그치지만 병상조정이 불가능하다며, 이 부분에 대한 유연성이 확보된다면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도입하고 싶지만 인건비 부담을 떠나 의사인력 구인이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현행 2명 이상인 규정을 1명만 확보하더라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완화한다면 의사인력 부족 문제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내과전공의가 25명이었으나 수련기간이 3년으로 단축된 뒤 지금은 휴가자를 빼면 9명에 그친다”며 “내과 교수들이 3개월에 한 번씩 당직을 서다가 지금은 20일에 한 번 꼴로 당직을 서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립대 병원장인 F병원장은 “찾아오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도 없어 내과 의사들이 쉴새 없이 콜을 받고 있지만 올해 내과전문의 900명이 배출되는데 입원전담전문의는 아무도 안 하려고 한다”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도 4개병동을 운영하고 있지만 연간 간호사 인력을 100~200명씩 투입해도 3년차엔 대부분 타 지역이나 타 분야로 떠나버려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의료인력난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권역센터의 경우도 지정할 때 뿐만 아니라 사후관리가 잘 돼야 유지가 가능한 만큼 이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종합병원장인 G병원장은 “10년 뒤면 환자쏠림이 더 심화될 것인 만큼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해야 해결된다”며 “지방환자가 서울의 병원에 가면 우선 예약을 잡아준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은행 기피대상 1순위가 병원, 두 번째가 휴대폰가게, 세 번째가 주유소라는 말이 있다며 병원들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쓰러지기 전에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 다른 전문병원장인 H병원장은 “권역책임의료기관 지정 과정에서 국공립병원이 없어 사립병원을 지정하게 될 때 병원 간 피 터지는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며 “그림이 좋아서 밀어붙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장에 있는 주체들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내부의 치열한 의견조율을 거쳐 분배와 정책이 단순화돼야 한다”며 “정책이 마련되면 충분한 보상이 뒤따라야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합병원장인 I병원장은 “너무 많은 의료정책이 만들어지고, 대부분 서울의 빅5에 혜택이 치중되고 있다”며 “지역병원들은 분만실이나 심장센터, 심혈관센터 등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 요건을 충족시키기보다 모두 닫고 외래만 보는 게 수익성이 더 높지만 가산점을 받으려면 울며겨자먹기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방의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지방병원을 살리려면 지방 실정에 맞는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지방 간호대학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경기도 출신이어서 졸업하면 다 떠난다”며 “의전원이 실패한 것도 입학생 대부분이 서울 출신이었기 때문이며 결국 입학생의 출신지역을 제한해야 지역에 의료인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또 정책 시행에 임박해 발표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사전에 미리 알려 병원들이 사전에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달라는 것과 환자 외에 공급자도 고려한 의료전달체계가 수립돼야 공급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병원계의 이같은 의견에 대해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오늘 병원장님들이 주신 고견은 대부분 정부도 고민하던 부분”이라며 “단계적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지만 가장 핵심은 인력문제”라고 진단했다.

정 과장은 “인력이 없으니까 서비스 질도 담보하기 어렵고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며 “인력문제는 단번에 해결이 어려운 문제여서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의료전달체계 단기대책에서 2차병원이나 의원급 관련 대책이 많이 빠진 상태로 발표됐다”며 “중장기대책은 지역병원으로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방안을 포함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과장은 “상급종합병원에 경증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하려면 진료권 부활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적어도 외래환자에 대해 비용 차등화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은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또 지역우수병원과 전문병원 역할 및 균형 잡힌 의료질평가를 위해 더 많이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간호간병통합병상을 애초 10만병상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간호인력 쏠림문제 등으로 인해 당분간 더 늘리지 않고 4개병동 수준을 유지하며 속도조절을 하겠다고 밝혔다.

손호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당분간 의료인력 보릿고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처럼 서울지역 쏠림 현상에 대한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3D 과목 전공의와 간호인력 부족 문제 역시 현재로선 묘책을 찾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는 또 외국의 간호인력을 수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간호조무사 활용 문제는 간호계와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 국립대병원장은 “전임의 제도가 생기면서 의사인력 부족과 관련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며 “다들 연봉 3억원을 주겠다는 지방병원을 안 가고 몇 천만원 받고 빅5 병원 펠로우로 가려 한다. 여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특히 지금은 전임의 기간이 점점 더 연장되는 추세까지 보여 지방 의사 인력난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헌주 정책관은 “오늘 병원장들께 많이 배운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특히 빅5 중심의 정책을 바꾸면 안 되겠느냐는 지적이 많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김 정책관은 “오늘 주신 의견은 물론 앞으로도 여러분의 말씀을 더 많이 반영해 좀 더 정교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을 내놓겠다”며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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