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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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주홍글씨"
  • 윤종원
  • 승인 2004.10.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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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속에 갖혀 있는 남자. 총을 쏴봐도, 발길질을 해봐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안은 잔뜩 달궈져 땀은 비 오듯 흐르고, 같이 갇혀 있던 여자는 견뎌내기는 도저히 힘들 그런 고백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안 있어 피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여자. 남자는 발버둥칠수록 피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하지만, 트렁크 속 이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닫힌 트렁크처럼 세상은 꽉 막혀 있고 피투성이가 된 우리들은 하루하루를 메아리없는 비명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편 "호모비디오쿠스"와 첫 장편 "인터뷰"를 통해 주목받았던 변혁 감독이 두번째 장편 영화 "주홍글씨"(제작 엘제이필름)로 29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출연 배우들이나 감독이나 한결같이 얘기하듯 영화는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영화다. 인물들은 욕망을 탐닉하며 잘난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이면에는 비밀을하나씩 담고 있고 결론도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은 하나씩 드러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몽롱할 뿐. 살인사건을 해결하려하는 남자도, 그의 아내와 정부도 그리고 의심스러운 용의자도 결국 향하고 있는 곳은 패배가 예정된 결말이다.

주변의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기훈(한석규). 사랑스러운 아내 수현(엄지원)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으며 열정적인 정부 가희(이은주)가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강력계 형사인 그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그만큼 성공도 눈에 잡힐 듯하다.

어느날, 그에게 살인사건 한 건이 배당된다. 살해당한 사람은 30대 남자. 살해당한 곳은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관이다. 시체는 무언가에 맞은 채 심하게 피를 흘린채로 발견됐고 신고자는 하얗게 얼굴이 질린 미망인 경희(성현아)다.

사건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의자를 체포한 기훈.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마침 아내 수현도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가희와 기훈의 관계를 눈치 챈 듯하다.

가희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기훈. 가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고 상황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항상 장난같이 시작되는 유혹을 왜 피하겠는가"라는 기훈의 욕망에서 "당신은같이 사는 사람이 견딜수 없어지는 적 없나요?"라고 묻는 경희의 미움까지, 영화 속인물들은 하나같이 일탈을 보이고 있지만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후반부 이들 위에 내려 앉는 운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옷이 다 벗겨질 때쯤 반전은 충격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촘촘하게 잘 짜인 스릴러나 잘 다듬어진 드라마의 틀도 영화의 장점. 깔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매력적인 편집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지만 영화는 새로운 "그림"에 한눈 팔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지켜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 보인다.

이기적이고 나쁘지만 인간적인 기훈의 모습을 보여준 한석규의 연기도 기대를넘어서고 있으며 세 여배우, 특히 이은주는 지금까지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상영시간 117분.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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