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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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썸"
  • 윤종원
  • 승인 2004.1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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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SOME"은 정확하게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지칭하지 않는다. "콕 찍어" 설명하고 싶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경우 "SOME"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어체로는 "대단한" "굉장한"의 의미도 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썸"의 장윤현 감독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썸"이기를 바랐다. 그는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글자를 찾다가 "썸"을 발견했다. 특별하게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이 영화를 상징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역시 SOME이라는 글자만큼이나 모호하고 넓은 설명. 혹시 너무 이미지에만 기댄 선택은 아닐는지. 물론 그 자체로 "대단하다" "굉장하다"는 감탄을 관객에게서 끌어낼 수 있다면 성공이다.

SOME의 사전상 의미는 "어떤" "언젠가" "누군가" "어딘가". 영화 "썸" 역시 그러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렇듯 모호한 설정이 가능한 것은 영화가 데자부(旣視感)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나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것은 경험한 것일까, 단순한 착각일까.

필름 전체를 컴퓨터 작업을 통해 어둡고 세련된 컬러로 색보정한 "썸"은 덕분에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세기말적 미래를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강력계 형사 고수와 교통방송 리포터 송지효는 마약사건에 얽혀 아주 이상한 24시간을 보낸다. 이른 새벽부터 한밤까지 두 사람은 늘 우울한 톤의 하늘 밑에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기이한 느낌의 하루를 살게 된다. 느낌으로만 그치면 다행. 그러한 느낌은 쉼없이 몰아치는 음모로 연결된다.

영화의 키워드는 송지효의 데자부. 문득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강렬하면서도 또렷한 이미지들이 하루 동안 계속된다. 송지효의 오늘 하루는 몇 시간 후를 시종 예견하며 진행된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고수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흥미진진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범죄예방프로그램에 의해 경찰 크루즈가 미래의 살인자로 지목된다. 크루즈는 이를 미리 알고 그 미래가 조작됐음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를 연상케 하는 "썸"에서는 고수가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대신 그의 죽음을 "미리" 본 송지효가 발을 동동 구른다.

영화는 스타일과 영상에서 돋보인다. 특히 자동차 추격신이 압권인데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교와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30여 대의 차량을 파손해가며 다이내믹하게 찍어낸 차량 추격신은 역주행 장면에서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시퀀스다.

장 감독은 "우리의 기술로도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장면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면에 너무 힘을 쏟은 때문인지 영화는 드라마의 긴장감이나 논리성에서 허점을 내보인다. 고수와 송지효라는 영화의 신예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장 감독은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젊은 감각은 스타일에만 머물렀을 뿐, 그 핵심은 파고들지 못했다. 요란한 차림새와 피어싱으로 단장한 젊은이들이 화면을 수놓으며 퇴폐적이고 "헤비메탈"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피상적이다.

또한 송지효의 데자부가 난데없다. 어려울 수 있는 소재라 그런지 장 감독은 매순간 관객의 이해를 친절하게 돕는다. 그러나 극의 긴장감은 반감되고 말았다. 반면 송지효가 왜 이날 하루만 데자부를 경험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아무리 하나하나가 "SOME"이라는 설정이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허전하다.

그럼에도 "썸"은 안방 드라마 같은 "작은" 영화들이 주류를 이룬 가을 극장가에서 영화적 가치로서 경쟁자가 없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영화의 큰 미덕임을 생각할 때 "썸"의 실험은 분명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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