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강호"
상태바
<새영화> "강호"
  • 윤종원
  • 승인 2004.10.15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친구"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동건은 "칼세례"를 받는다. 전봇대에 몸을 기댄 채 주저앉은 그의 머리 위로는 빗줄기가 처연하게 주룩주룩 내린다.

그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홍콩 느와르 영화가 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강호"에서 장동건의 얼굴은 류더화로 바뀐다.

"강호"는 "무간도" 이후 부활하고 있는 홍콩 느와르의 바통을 이은 영화다. 지난 4월 홍콩에서 개봉해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총 1천 3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제작자이자 배우로 출연한 증지위가 기분좋게 보너스 잔치를 연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낯익은 장면이 두 차례 등장한다. 류더화의 비참한 죽음외에도 비 내리는 계단 위의 싸움 모습이 그러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안성기가 활약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홍콩 느와르에서 한국영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기분은 참 묘하다.

이에 대해 "강호"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웡칭포 감독(30)은 이러한 지적에 "딱 꼬집어 그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헌정)를 받친 것은 아니지만, 워낙 많은한국영화를 감명 깊게 보아서 은연 중에 영향을 받기는 했을 것"이라고 에둘러 설명했다.

류더화, 장쉐유 주연의 "강호"는 흔히 말하는 무림의 세계 "강호"를 조폭들의 세계라 은유하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약육강생과 세대의 순환을 그렸다.언제든 신진 세력은 치고 올라오기 마련이고,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은 1인자도 결국에는 밤이슬과 함께 사라지는 "법칙"을 그렸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강호의 법칙이라는 것.

이 영화는 "무간도"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의 특성을 떠나서 등장하는 배우들이 같다. 류더화뿐 아니라, "무간도" 시리즈에서 류더화와 량차오웨이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여문락과 진관희가 또다시 나란히 등장한다. 약간의 역할 바꾸기는 있으나, 그러한 설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간도"가 떠오르게 된다.

서른 살의 신예 감독과 스물다섯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결합해 느와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강호"는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영화는 독자적인 길보다는 여러 앞선 영화들의 후광에 상당 부분 의존한 듯하다. 본의는 아니었다 해도 "강호"가 신선함이나 독특함보다는 각종 오마쥬나 "기억" 등을 이용해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
.
다만 한 가지. 느와르 영화에서 거의 "싱글"이었던 류더화가 "강호"에서는 어느덧 아들을 얻는다. 영화 속 설정이긴 하지만 류더화 역시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격세지감이 든다. 여전히 나이에 비해서는 너무나 근사한 자태이지만 그도 이제는 "나이 든" 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홍콩의 뒷골목을 파고든 영화는 시종 어둡고, 혼탁하다. "무간도"와 달리 영화에는 조폭 이외의 세계는 없다. 조폭 안의 배신과 음모, 끝 간 데 없는 욕심을 그렸다. 와중에 피보다 진한 동지애와 가족에 대한 갈등도 있다. 인물 간의 구도가 다소 복잡하기도 하다. 느와르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갖췄다.

하지만 허전하다. 그래서 손맛과 경륜을 운운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