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전기수술기 조작하면 ‘의료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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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서 전기수술기 조작하면 ‘의료행위’
  • 최관식 기자
  • 승인 2019.1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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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업무 범위 추상적, 실제 적용은 판례나 유권해석 인용
오성일 서기관 ‘한국의료법 해설’ 토대로 의료계 관심사 소개
▲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료법의 해설' 표지.
별도의 구체적인 정의 규정을 담고 있지 않은 의료법은 이해관계 및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줄 수 있어 판례와 유권해석이 법의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간의 판례를 보면 문신이나 채혈, 그리고 피로회복 차원을 넘어 질병 치료 목적으로 시행된 안마·지압, 스포츠마사지는 물론, 심지어 수술실에서 전기수술기 다이얼을 조작하는 것도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의사가 건강식품 복용을 권유하는 것은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판례가 있다.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는 오성일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 보육기반과 서기관이 최근 출간한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료법의 해설’에서 의료계가 관심을 갖는 내용을 일부 발췌해 소개한다.

오 서기관에 따르면 의료인은 각각 주어진 범위에서 업무를 해야 하며, 이 업무 범위는 면허 범위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다만 의료법 제2조 제2항에서 정하고 있는 업무 범위는 추상적인 형태로 서술돼 있어 이것만으로는 현실 적용이 어렵고, 실제 적용은 판례나 유권해석을 토대로 이뤄진다는 것.

또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문언상 비의료인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의료인의 면허 밖 의료행위는 대등한 수준에서 금지되고 있다.

의료법상 의료행위는 의료인 만이 할 수 있고, 의료인은 면허 받은 범위 내에서만 의료행위를 해야 하며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 △그 주체별로 가능한 의료행위의 범위를 규정한 것이 의료법의 핵심 조항이다.

판례는 의료행위를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검안·처방·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해야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외에도 의료인이 행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오 서기관은 “다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의학의 발달과 사회의 발전, 의료서비스 수요자의 인식과 요구에 수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면서 “시대적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법 해석에 맡기는 유연한 형태가 더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의료법 규정에서 의료행위 개념을 명확하게 두지 않고, 의료행위의 내용과 구분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하지 않음에도 헌법재판소가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배경과도 일치한다.

판례를 고려할 때 의료행위인지 아닌지는 △행위의 근거(의학적 전문지식 필요여부) △행위의 양태(대상자의 상태에 따른 진단·처방·처치 수반여부) △행위의 효과 및 부작용(보건위생상 발생 가능성)을 종합해 판단돼야 하며 원칙적으로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라도 해당하면 의료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 즉,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행하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그 대상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행위는 의료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오성일 서기관이 소개하고 있는 실제 판례를 보면 문신의 경우 대법원 판례(1992년 5월22일)에서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고객들의 눈썹 또는 속눈썹 부위의 피부에 자동문신용 기계로 색소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눈썹과 속눈썹 모양의 문신을 해준 행위는 작업자의 실수 등으로 진피를 건드리거나 진피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문신용 침으로 인해 질병의 전염 우려도 있는 점, 또 한 사람에게 사용한 문신용 침을 다른 사람에게도 사용하면 이로 인해 각종 질병이 전염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이같이 판시했다.

다만 정부는 2019년 10월10일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방안의 하나로 반영구화장의 미용업소 시술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이를 위해 공중위생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채혈의 경우도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2014년 1월16일)은 보험가입자들의 신체로부터 혈액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감염·혈관손상·과다채혈·응고과정에서의 돌발상황 발생 등 사람의 생명·신체나 공중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채혈행위는 그 자체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안마·지압이나 스포츠마사지의 경우도 피로회복 차원을 넘어 질병 치료행위까지 이를 경우는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2000년 2월25일)는 안마나 지압이 단순한 피로회복을 위해 시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대해 상당한 물리적인 충격을 가하는 방법으로 어떤 질병의 치료행위에까지 이른다면 이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 즉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스포츠마사지의 경우 대법원(2004년 1월15일)이 손을 이용하거나 누워 있는 손님 위에 올라가 발로 특정 환부를 집중적으로 누름·주무름·두드림의 방법으로 길게는 1개월 이상 시술을 하고 그 대가로 일정한 금액을 받았을 때 이는 단순한 피로회복을 위한 시술을 넘어 질병의 치료행위에까지 이른 것으로 그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밖에 카이로프락틱과 파라메딕(방문검진), 수술실에서 전기수술기 다이얼 조작, 건강기능식품을 비만을 치유하는 데 효력이 있는 것처럼 판매하고 부작용을 호소하자 그 대처방법이나 복용방법을 상담한 행위, 자신 나름대로의 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을 이용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머리카락 제공자의 건강상태, 질병의 유무 등을 규명·판단한 행위 등도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서울고등법원(1989년 3월24일)은 환자에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건강식품의 복용을 권유한 것은 새로운 병상이나 병명이 규명·판단됐다고 보기 어렵고 질병의 치료를 위한 처방이나 투약행위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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