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건의료인 수급대책 마련 시급하다
상태바
[기고] 보건의료인 수급대책 마련 시급하다
  • 한봉규 기자
  • 승인 2019.03.08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창보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연구교수(법학박사)

 우리나라 보건의료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의료인의 과로사 문제, 환자의 안전문제에 이어 의료인의 안전문제, 의료분쟁 등 다사다난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의료인 특히 의사의 과로사 문제이다. 지난 2월1일 가천대 길병원 레지던트 신모씨가 근무 중 숨지면서 전공의 과로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전공의ㆍ수련의 근무시간을 최대 주 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이른바 전공의법이 시행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어서 같은 달 4일에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이 설 연휴에 근무 중 돌연 사망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의료인력 부족의 문제라고 보고 정부에서는 입원전담 전문의 제도와 함께 야간전담 간호사 활성화, 경력 단절자 채용을 통한 파트타이머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환자안전에 대한 체계적이고 총괄적인 관리와 환자안전사고에 대한 보고체계를 마련하고 보건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2016년 7월부터 ‘환자안전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 영남대병원의 골수검사 중 마취진정제 과다 투여로 사망한 재윤이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는 의료기관에 보고의무를 부과하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칙적으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의료기관이 인증원에 자율 보고를 해야 하지만 의무사항이 아닌 탓에 보고가 미흡하므로 보고를 강제화 하는 이른바 ‘재윤이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셋째, 의료인의 안전에 대한 문제이다. 지난해 12월 강북삼성병원에서 조울증을 앓던 환자가 외래진료 도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사건과 관련하여 안전한 진료 환경의 조성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법, 응급의료법, 정신건강복지법 등의 개정안인 이른바 임세원법이 발의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가해자 처벌강화, 비상벨·비상 공간 설치, 반의사 불벌죄 삭제, 주취자 감형폐지, 형량 하한제, 벌금형 삭제, 보안요원 배치, 의료인 보호권 등이 언급되고 있다.

다음으로 의료분쟁의 문제이다. 의료사고로 분쟁이 일어나면 당사자 합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또는 소비자원을 통하여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으나 이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과 관련한 형사소송에서 검찰이 의료진에게 제기한 가장 큰 혐의는 사건 발생당시 피해자 신생아들에게 지질영양제인 스모프리피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감염관리 등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2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신생아중환자실 주치의 등 의료진 7인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에 힘입어 의료계에서는 의료분쟁특례법, 의사의 의료행위가 원칙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법제정을 정부에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의료인에게는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환자증상, 치료의 내용과 방법 또는 필요성, 치료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에 관해 설명하여야 할 의무(의료법 제24조의2)도 별도로 있다.

이상에서 보건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과 그에 대하여 제시되고 있는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으로 증상만을 억제하는 대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의 공통점인 그 원인이 보건의료인의 부족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먼저 보건의료인의 과로사 문제에서는 업무 과중성의 원인으로 투입되고 있는 인력의 적정성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의료인도 근로자로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 40시간, 당사자 합의를 해도 주 52시간의 적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3조).

여기서 보건업에 의한 노동시간 특례제도가 있어서 근로자 대표와 합의를 하는 경우 연장근로 12시간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사용자는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근로자에게 연속하여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9조).

그러면서도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의료법 제15조). 의료인이 근로기준법에 의한 법정근로시간을 이유로 진료에 임하지 아니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보건의료인에 대한 이러한 양면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적정인력을 확보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예컨대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공의의 수련시간이 최대 주 88시간 등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기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는 산재보험법에서 과로사의 인정기준에서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일본에서는 의사의 과로사와 관련하여 ‘의사의 일하는 방식에 관한 검토회’를 후생노동성에 두고 전문가들이 모여 의사의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환자의 안전 내지 보건의료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보건의료인의 적정인력 확보는 필수이다. 보건의료인이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고 환자의 안전을 돌볼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또 의료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의료인의 설명의무 내지 주의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소요시간이 확보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적정 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인력이 OECD 국가에 비하여 현저히 부족하다며 이미 2012년부터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제정이 논의 되어 왔다.

보건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아직 법제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또 적정인력의 수급규모와 그 추가확보에 따른 재원의 부담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인력이 적정하게 수급 또는 배치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와 보건의료 환경이 유사한 일본에서는 단카이 세대가 75세의 후기고령자가 되는 2025년에 대비하여 의료기능별 필요한 병상수 등을 추계하고 의료종사자의 수급 전망, 그 확보대책, 지역 편중, 진료과 편중 등 문제를 검토하기 위하여 이미 2015년에 ‘의료종사자 수급에 관한 검토회’를 후생노동성에 두었다.

각계의 전문가 28명으로 구성하였으며 나아가 의료종사자 직종별로 지역의 수급상황 및 확보대책이 다른 점을 고려하여 의사 수급분과, 간호사 수급분과, 물리치료사 수급분과를 설치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일본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구구조의 변화와 지역별 실정에 맞는 의료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정부 주도하에 전문가집단을 구성하여 연구검토하여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법제정을 통한 해결을 모색하려는 우리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도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커뮤니티 케어의 시행에 따른 보건의료인 수급에 관한 전문적 연구를 통한 법제화 등 그 대책이 시급하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