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약가 불투명성, 국제 공조로 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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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약가 불투명성, 국제 공조로 대응 필요
  • 최관식 기자
  • 승인 2018.11.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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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비아 연구위원 “외국 등재약가 직접 활용보다 재정 능력 감안해 결정해야”
세계적으로 고가 신약의 등재 약가가 실제 지불가격이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가운데 이같은 불투명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국가 단위에서는 외국의 등재약가를 직접 활용하지 말고 국내 보건의료 재정과 지불 능력을 기준으로 약가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11월30일 보건복지포럼 11월호에 기고한 정책분석 자료 ‘의약품 접근성과 약가 투명성 : 트레이드오프인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이 자료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 유럽 4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료 수집이 가능했던 38개국 중 24개국이 의약품 급여에서 결정된 약가와 실제 지불가격을 달리하는 ‘도입관리계약’을 시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소개했다. 이들 24개국 가운데 계약의 내용 또는 약가가 기밀 사항으로 다뤄지는 국가는 21개국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또 미국과 캐나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호주, 뉴질랜드 등 11개국의 의약품 급여 당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연구에서도 응답한 10개국 모두 최근 2년간 건강보장체계의 약가 결정에서 실제 약가가 등재 약가보다 낮은 할인 또는 환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약가의 비밀 할인은 고가 전문치료제에서 더 자주 나타났으며, 50% 이상 비밀 할인이 이뤄진 국가가 4개국, 25~50% 사이인 국가가 3개국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한 비밀 할인 유형은 등재 약가에서의 일률적인 할인 및 환급이었고, 이어 사용량·패턴과 연계한 할인 및 환급, 치료결과와 연계한 할인 및 환급 순이었다.

공식 등재 가격에서의 실제 가격 할인 비율은 20~29% 사이가 가장 많았다.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항암제의 공식 등재 가격과 실제 가격을 모두 조사한 연구에서 국가별로 가격의 변이가 매우 컸으며, 등재 가격과 실제 가격의 차이에서도 변이가 컸다고 지적했다.

위험분담계약(RSA)을 가장 흔히 적용하는 이탈리아에서는 등재 가격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특히 높았고, 실제 가격과의 차이도 컸다. 병원 입찰 구매가 발달한 노르웨이는 경제 수준이 가장 높지만 실제 지불 가격은 낮은 편에 속했다. 반면 헝가리는 경제 수준에 비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어 국가의 지불 능력에 따른 지불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다국적제약사 입장에서는 국가별 공식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실제 지불 가격을 비밀로 할 때 협상력이 높아지고 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며 “반대로 지불자는 실제 가격을 파악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됨으로써 제약사에 약가 인하를 더 강력히 요구할 수 있어 결국 약가 수준은 국가별 제도 역량과 구매력, 협상력 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성 평가 등 신약의 가치 평가에 의해 적정 약가를 산출, 지불자가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늘리고 인구수 등 시장 규모에 의한 구매력을 갖고 지불자의 협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조언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시장 규모가 작은 중부, 동부, 북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공동 구매 활동이 활발하며, 대표적인 협력체인 ‘베네룩스에이(BeNuLuxA)는 정보 공유와 약가 공동 협상 등을 통해 협상력을 키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공동 약가 협상 및 공동 구매는 국가 간 외에 캐나다와 스웨덴 등의 경우 국가 내의 서로 다른 지불자 간에도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협상력을 높여 적정 지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 꼽았다.

단일 공공보험에서 의약품을 급여하는 우리나라는 선별목록제(positive list system)라는 의약품 급여제도 틀 아래에서 위험분담제도를 통해 고가 중증질환 치료제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약가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행정 및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세계 의약품산업의 연구·개발 동향을 볼 때 향후 항암제를 비롯한 고가 중증질환 치료제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그 과정에서 재정의 지속성과 치료제에 대한 의학적 필요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예고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국제적으로 신약의 등재 가격이 높아지고 비밀 약가가 형성될 환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험을 통해 우선 제안되는 전략은 지불자, 구매자들의 공동 대응과 협력이지만 정책적 자원이 빈약한 국가들이 약가의 세계적 불투명화에 의해 결과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차원의 국제적 대응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또 “국가 단위에서는 외국 약가의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약가제도를 정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약가 결정에서 외국의 등재 약가를 직접 활용하지 않아야 하며 특히 위험분담계약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국가 또는 국가의 공시 가격과 별도로 지역 단위에서 약가 협상이 이뤄지는 국가의 약가는 불투명성이 매우 높으므로 약가제도에서 참조하는 국가 목록에서 가급적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외국 약가를 참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약가의 수준은 제도 역량과 구매력, 협상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보험자는 재정 계획에 의거해 자신의 지불 의향에 부합하는 가격 수준을 산출해 제시할 필요가 있으며, 약가 수준에 대한 판단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외국 가격과의 비교가 아니라, 분명한 값이 있는 국내 보건의료 재정과 지불 능력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이와 동시에 국내 약가에서 투명성을 높이는 활동도 필요하다”며 “현재 보장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약가의 불투명성을 수용하는 위험분담제도의 대상을 최소화하는 제도 골격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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