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생명 구한 트랜스포머 구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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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생명 구한 트랜스포머 구급차
  • 한봉규 기자
  • 승인 2018.08.3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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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린대성심병원, 국내 유일 중환자실 구급차 가동

지난 7월 31일 오후 4시 56분. 119 구조대원들이 13세 김모양(경기 부천시)이 실린 병상을 끌고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에 달려 들어왔다.

산소마스크를 낀 김양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급성 호흡부전이 온 상태였고, 기침할 때마다 연신 물과 피를 쏟아냈다. 같은 날 오전, 김양은 방학을 맞아 가족과 강원도 홍천 부근 계곡에 물놀이를 하러 갔다.

물 밖에서 보면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수심이 얕은 곳이라, 김양은 언니와 함께 안심하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무 그늘에 숨겨진 움푹 파인 곳에 실수로 발을 헛디뎠고, 김양은 그대로 가라앉아버렸다.

하지만 해당 구역이 수심이 깊고 어두워 안 보인 탓에 가족들은 김양이 빠진 줄도 몰랐다. 우연히 근처 높은 지대에서 놀던 동네 어린이들이 물에 빠진 김양을 발견했고, 김양은 곧 구조됐다.

하지만 이미 물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폐에 물이 가득 차 온몸의 피가 역류하고 있었고, 폐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제 기능을 못 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이윽고 119 구급대의 도움으로 김양은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었으며 산소포화도도 지속적으로 떨어져 69%에 이르렀다. 산소포화도 80% 이하는 매우 저산소증 상태를 의미한다. 김양의 부모는 의료진에게 제발 딸을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의료진은 김양에게 기도삽관을 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달아 산소를 주입했다. 그런데도 산소포화도가 좋아지지 않자, 의료진은 폐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에크모(ECMO·체외막 산소화 장치)를 삽입했다.

동시에 집중 호흡기 치료를 시행하기 위해 한림대학교의료원 내 연계 네트워크를 이용해 상급종합병원인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에크모센터에 전원을 의뢰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여건에서는 전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양은 에크모 치료를 1분도 멈추면 안 되는데, 에크모 기계를 단 채로는 구급차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구급차는 규모가 작아서 에크모 같은 중환자 전문 장비를 실을 수 없고, 차 안에서 장비를 돌릴 충분한 동력도 없다.

의료진이 좁은 차 안에서 전문적으로 치료하기도 힘들다. 이에 의료진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이 지난해 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중환자실 구급차(Hallym Mobile ICU)’를 가동하기로 했다.

중환자실 구급차는 중환자가 생명 유지 및 회복 치료를 지속하면서 병원 등 장소를 옮길 수 있도록, 증상 발생 후 30분 이내에 진단·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중증 응급환자 전용 이송체계이다.

환자 발생 시 병원에서 24시간 대기 중이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진 3~4명이 한 팀으로 움직여 중환자실과 동일한 치료 시스템이 설비된 구급차 내에서 곧바로 전문적인 처치를 시작한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중환자실 구급차는 월평균 1회 가동되며, 가동 시 환자 생존율은 85%에 달한다. 중환자실 구급차는 일반 구급차보다 규모가 1.5배 정도 크며 내부에 에크모 장비·인공호흡기·환자 상태 모니터링 장비·약물주입장비 등 중환자실과 동일한 치료 시스템이 설비돼 있다.

에크모·인공호흡기 등 여러 장비를 동시 가동하기 위해 내부 전력을 일반 구급차 대비 2~3배 더 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산소통도 일반 구급차 대비 4배 정도 실을 수 있어 에크모와 인공호흡기를 동시에 사용 가능하며 장거리 환자도 옮길 수 있다.

이 구급차를 이용하면 김양이 에크모를 장착한 채 구급차 안에서 전문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연락을 받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에크모센터 팀은 저녁 9시 29분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에 도착했다.

이후 김양의 에크모를 중환자실 구급차에 맞는 이동식 에크모로 바꾸고 여러 장치를 교체한 후 한림대학교성심병원으로 향했다.

김양의 부친은 “건강했던 막내딸이 반나절 만에 의식을 잃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서, 모든 장비가 갖춰진 트랜스포머 같은 큰 구급차가 눈앞에 나타나자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의료진은 중환자실 구급차에서 끊임없이 에크모를 돌리며 폐 치료를 시행했고, 8월 1일 자정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 도착했다.

이후 폐 속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폐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돕는 재생치료를 시행했다. 김양의 부모는 딸의 사진과 대화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김양에게 편지를 쓰며 회복만을 기다렸다.

딸의 상태가 매우 불안했지만, 하루 40분씩 면회를 갈 때마다 김양의 발 밑에 담당 주치의인 김형수 교수(흉부외과)가 앉아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며 안심하곤 했다. 에크모 치료를 지속한 지 4일 만인 8월 5일, 김양의 산소포화도는 100%에 이르러 에크모를 제거했다.

이후 호흡하는 데 적응하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가, 8월 6일에는 이마저도 제거했다. 이윽고 눈을 뜬 김양은 부모에게 “난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왜 이런 무서운 곳에 누워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스러운 듯 말했다. 부모는 그런 딸을 꽉 안으며 다시 살아난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8월 7일에는 김양의 상태가 거의 정상에 가까워져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했다. 이후 김양은 기력을 완전히 되찾았고, 최근 퇴원했다.

김양의 부모는 “하늘이 딸의 새 생명을 위해 한림대학교의료원으로 인도하신 듯 하다”며 “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딸아이의 사라진 8일의 기억과 새 삶이라는 선물을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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