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3대 심장수술과 대장암수술로 초고령 환자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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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3대 심장수술과 대장암수술로 초고령 환자 살려
  • 한봉규 기자
  • 승인 2018.05.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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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고려인에게 새 생명 선물

A(80․남)씨는 4년 전 호흡곤란으로 경기도의 모 대형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의사는 “심장혈관이 모두 막혀있고 심장기능도 30%로 떨어졌다. 당뇨병까지 있기 때문에 가슴을 절개하는 순간 사망할 것”이라며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입원 중 A씨는 고통으로 정신을 잃었고 가족들은 장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가족들은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퇴원을 결정했다. 그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포인 고려인이었다. 그

의 할아버지 때부터 러시아에 정착해 살았고 혹독한 추위와 강제이주, 소련 해체 등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의 가족은 2008년 대한민국 정부의 고려인 귀화 장려정책의 도움을 받아 고향땅을 밟고 한국인으로 귀화할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조국이었지만 건강에 이상이 찾아왔다.

2011년 위암수술, 2014년 담낭수술을 받고 또다시 심장에 이상이 온 것이다. 퇴원 후 그는 힘겨운 삶을 유지했다. 경동맥 혈관이 막혀 중풍이 왔고 몸의 기능이 퇴화하며 한쪽 팔에 힘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지난해 6월 심부전에 따른 심한 폐부종으로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병원장 유규형)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호흡곤란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했으나, 대변잠혈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와 대장내시경을 시행한 결과 대장암 2기로 진단됐다.

문제는 대장암 수술을 하기에는 그의 심장 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검사결과 그의 심장은 문제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빠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혈액을 내보내는 심장의 펌프기능을 측정하는 좌심실 구혈률이 20%까지 떨어져 있었고 심장초음파검사에서는 심각한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발견됐다.

고령인 환자가 심장기능이 약해져 있는 경우 관상동맥까지 막혔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역시 심장조영술 검사에서 삼중혈관이 막혀있는 관상동맥 협착증이 발견됐다.

또 대동맥의 심한 석회화로 우측무명지동맥 기시부와 좌측총경동맥 기시부가 약 95% 이상 협착되어 있었고, 좌쇄골하동맥은 완전 폐쇄돼 있었다. 대장암 수술을 할 경우 마취 과정에서 심장기능이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심장수술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환자의 심장병 진단명은 관상동맥이 막혀있는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었다. 제 기능을 못 하는 대동맥판막을 교체하고 관상동맥우회술을 진행해야 했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았다. 치환술을 하기 위해서는 대동맥을 붙잡아 혈류를 멈추는 겸자를 해야 했다.

그러나 대동맥의 심한 석회화로 겸자를 하게 되면 혈관이 통째로 으깨질 수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저체온요법으로 몸 전체의 혈류를 순환정지 시키는 것이었다. 보호자를 만난 흉부외과 이재진 교수는 복잡한 수술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먼저 심한 저체온요법으로 혈류를 순환정지 시킨 뒤 대동맥궁치환술과 대동맥판막치환술을 시행한다. 마지막으로 삼중혈관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해 심장의 혈류가 원활히 순환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흔히 3대 심장수술이라고 불리는 대동맥 교체, 판막 교체, 관상동맥우회술이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성공확률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80세 초고령의 노인이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수술과정을 들은 가족들은 “이렇게 위험한 수술을 받을 수 없다”며 퇴원해 버렸다. 하지만 A씨의 흉통은 계속됐고 다시 병원을 찾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의료진은 A씨가 고통스런 삶을 살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결국 그와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수술을 받겠다”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수술 전 이재진 교수팀은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하며 하나의 오차도 없이 수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

7월 13일 오전 9시 30분 드디어 수술에 들어갔다. 체온을 20도까지 낮추는 저체온요법이 시행됐다. 수술팀은 인공심폐기를 이용해 뇌로 가는 혈류만 유지하며 모든 혈류를 순환정지 시켰다. 사람의 정상체온은 36.5도이며 흔히 34도를 생사의 경계온도라고 부른다. 때문에 체온을 20도까지 낮추는 저체온요법은 자칫하면 환자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또 세포들이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40분 안에 수술을 마쳐야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 수술실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수술팀은 A씨의 3개의 대동맥궁 혈관 중 우측무명지동맥과 좌측총경동맥 2개의 혈관을 포함한 대동맥궁을 인조혈관으로 바꿔주는 부분대동맥궁치환술을 시행했다.

좌쇄골하동맥은 오랫동안 폐쇄돼 있었고, 수술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결을 포기했다. 이후 천천히 체온을 올려주며 대동맥판막을 조직판막으로 바꿔주는 대동맥판막치환술이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미리 채취해 둔 양쪽 다리의 대복재정맥을 이용해 세군데 관상동맥에 연결하는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했다.

수술 시작 11시간 반이 지난 오후 8시가 돼서야 수술이 끝났고 A씨 몸의 모든 혈류가 정상적으로 순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었다. 수술 전 20%밖에 불과했던 그의 심장기능은 심장수술 일주일 뒤 33%까지 호전됐고, 수술 한 달 뒤에는 정상수준인 41%까지 좋아졌다.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고 이제는 대장암 수술도 가능해졌다. 마지막 남은 대장암은 8월 18일 외과 김종완 교수가 맡아 복강경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

수술 후 대장암 병기는 Ⅲ(3기)B로 항암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진단됐다. 9월부터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한 그는 총 12번의 항암치료를 모두 마쳤다. 항암치료 과정에서는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대장암 다학제팀이 빛을 발했다.

대개 항암치료 과정에서 항암제 사용의 부작용으로 암환자들의 심장기능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장암 다학제팀의 정확한 항암제 사용으로 항암치료 후에도 환자의 심장기능은 정상수준인 43.7%로 유지됐다.

또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사회사업팀은 저소득층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치료비 마련이 어려웠던 그에게 의료비지원사업을 연계하여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사나래봉사단도 지난 설 명절에 직원들의 급여 기부로 마련한 생필품을 그에게 전달하는 등 힘든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술 전 몸 곳곳에 마비가 와 다리를 질질 끌며 병원을 찾았던 그였지만 현재는 자유롭게 식사와 걷기운동을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교회에 다니는 그는 하루 2시간씩 신앙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

는 “고통이 너무 심하고 치료 가능성도 낮아 보여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준 의료진들과 치료비까지 지원해준 병원 관계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또 “수술과정에 대해 듣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적과도 같은 수술이 성공해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며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환자분들도 포기하지 않고 꼭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진 교수는 “암을 동반한 고령의 심장질환자의 경우 어떤 수술을 먼저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라며 “A씨의 경우 대장암 수술만 받을 수 있었으나 심장기능이 너무 떨어져 심장수술을 먼저 시행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환자분이 고령의 나이에 이전에도 수술경험이 있어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지만 힘든 수술을 잘 이겨내주셔서 감사하다”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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