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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료사고 후 기대여명 연장 시 법원의 배상액 판단 기준은?
조건미 세브란스병원 법무팀 변호사
2018년 05월 25일 (금) 09:34:22 병원신문 webmaster@khanews.com
   
▲ 조건미 변호사
생명의 시종에 늘 가까이 접한 곳이 병원이지만, 여전히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환자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생을 유지하기도 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돌연 사망하기도 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면서 환자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 즉 기대여명을 추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환자가 그 기대여명보다 오래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최근, 두 번의 판결 당시 예상됐던 기대여명보다 훨씬 오래 생명을 유지한 환자의 치료비에 관한 판결이 있어 소개한다.

A는 1998년 B병원에서 수술 및 치료를 받은 후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A와 자녀들은 B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B병원의 과실이 인정되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었다(1차 소송). 항소심이 진행된 2000년 당시에 A의 기대여명은 2004년 4월23일(기대여명기간 4.43년)로 추정되었고, 이를 기초로 일실수입, 여명기간 동안의 향후치료비, 개호비, 위자료 등을 산정하여 손해배상액이 결정되었다. 소송은 대법원에까지 이르러서야 확정되었다.

그런데 A는 기대여명이 종료된 4년 이후에도 계속 생존하게 된다. 그러자 A와 자녀들은 또다시 B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2차 소송). 감정결과 A는 2012년 6월14일(기대여명기간 8.4년)까지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A와 자녀들은 향후개호비의 경우 우리나라 평균 여성의 여명 종료일을 고려하여 2037년 9월28일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청구하였고, 향후치료비의 경우 감정결과 인정된 기대여명 상한선이 8.4년임을 고려하여 2012년 12월31일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청구하였다. 재판부는 A의 향후개호비, 향후치료비에 대해 A와 자녀들의 주장이 이유 있다고 판단하였고, 또다시 대법원까지 다투었으나 동일한 내용으로 확정되었다.

하늘이 A의 죽음을 원치 않은 것일까. 감정이 정확하지 않았던 것일까. A는 2차 판결에서 예상하였던 2012년 12월31일 이후에도 생존하게 된다. A측은 2014년 2월11일 또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 역시 대법원까지 가서야 확정되었다(3차 소송, B병원 법무담당부서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재판부는 A의 생계비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으나, A가 청구한 2014년 7월10일 이후의 향후치료비 등 적극적 손해배상청구 부분은 각하하였다. 향후치료비 부분은 A가 2차 소송에서도 청구할 수 있었던 부분이므로 2차 소송 당시 이를 청구하지 않은 A가 이를 3차 소송에서 이 부분에 대해 청구한 것은 2차 소송의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자 B병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A는 사고 당시부터 계속 B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2015년 1월1일부터 2015년 12월31일까지 발생한 진료비 1천만원가량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진료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B병원은 A에게 배상해야 할 적극적 손해는 2차 소송에서 2012년 6월14일까지 계산된 향후치료비와 2037년 9월28일까지 정기적으로 지급될 개호비가 확정됨으로써 모두 전보되었으므로 이후 진료비는 A가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은 이러한 B병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B병원이 청구한 2015년부터의 진료비는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의 전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이 기존 판례의 입장과 어긋나는 결론을 내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간 대법원은 의료진의 과실로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되었고, 손상 이후에는 그 후유증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 계속하고 있다면, 병원 측에서 환자에게 수술비와 치료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왔다. 의사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하여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재판부는 A가 2차 소송에서 2013년 이후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를 청구하였다면 A의 생존을 조건으로 인용되었을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A는 이를 청구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2차 소송의 기판력으로 인해 B병원에게 진료비 청구를 할 수 없지만, B병원 역시 A에게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A에 대한 진료행위는 여전히 B병원의 과실로 인한 손해를 전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얘기다. A가 더 이상 병원에 향후 진료비를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B병원도 A에게 진료비 청구를 할 수 없다니. 이는 대법원이 소송법상 소송이 허용되지 않는 것과 실체법상 A의 권리의 소멸이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가 명시적으로 향후치료비 청구권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이 없는 이상 A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소송으로 이를 다툴 수 없을 뿐. 결국 A가 진료비를 내지 않더라도 B병원은 이를 청구할 수 없다.

B병원은 A가 청구 가능했던 부분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맹점을 노렸지만, 법원은 다른 논리를 근거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병원 입장에서야 아쉽고 답답하지만, 대법원의 표현대로 원래 의료사고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병원 측에 약간의 위로가 될 만한 판결도 함께 소개한다. 고령의 환자 C가 D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미리 연명치료 거부 또는 중단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다. 이후 환자 측에서 직접 법원에 연명치료 중단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연명치료 중단을 명하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D병원은 2009년 6월23일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는데 C는 그 후에도 자발호흡으로 201일을 더 생존하다가 2010년 1월10일 사망하였다.

문제는 미납진료비 부분이었다. 진료개시일인 2008년부터 사망일까지 총 진료비는 약 8천710만원이었고, 약 8천690만원이 미납 상태였다. D병원은 C의 유족들에게 미납 진료비를 청구했는데, 이는 연명치료중단 판결 확정일 다음날부터 인공호흡기 제거 시까지 인공호흡기 유지 관련 환자 본인부담금은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었다.

1심 재판부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1심 판결 전까지 치료비는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지만, 해당 판결 후에도 병원이 환자치료를 진행했다면 병원은 비용을 유가족에게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명치료 중단 결정 후 의료인과 환자 간 의료계약이 해지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D 병원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고 대법원에 가서야 결론이 났다. 법원은 종국에는 병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명치료 중단판결에서 중단을 명한 인공호흡기 부착을 제외한 나머지 범위의 진료비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연명치료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기존 의료계약은 판결 주문에서 중단을 명한 연명치료를 제외한 나머지 범위 내에서는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영양 및 수액공급, 항생제 투여 등 다른 생명유지를 위한 진료와 병실사용에 대해서는 유족들이 진료비를 지급해야 했다.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이 곧바로 퇴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환자 또는 보호자와 병원 간 진료비에 대한 다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위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 후에도 의료계약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병원 실무에 큰 힘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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