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환자 전원시 주의해야 할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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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환자 전원시 주의해야 할 의무
  • 병원신문
  • 승인 2018.04.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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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미 세브란스병원 법무팀 변호사
▲ 조건미 변호사
최근 대법원은 출산 후 출혈이 심한 산모를 40km 떨어진 대형병원으로 이송시킨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하였다. 환자를 가능한 한 빨리 가까운 상급병원으로 옮겨야 할 주의의무가 있는데, 구급대원이 가까운 병원으로 전원을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멀리 위치한 병원을 고집하였다는 것이 이유다. 해당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도중에 사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짧은 시간 내에 전원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법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전원 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법원은 어떠한 경우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산부인과 의원의 사례다. 산모는 기존에 임신성고혈압이 있어 13:50경 제왕절개수술을 시행했다. 의사 A는 수술 중 경증의 태반조기박리를 발견하였고, 14:30경 수술을 마치면서 간호사들에게 ‘출혈이 있을지 모르니 잘 지켜보라’고 지시하였다. 약 45분이 지난 15:15경 산모는 대량출혈로 인해 혈압이 90/60mmHg까지 떨어졌고, A는 자궁마사지를 하고 자궁수축제 및 혈량증량제를 투여하였으나 산모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결국 15:50경 상급병원 응급실에 전원조치를 취하였는데 당시 산모의 결막은 창백하고, 혈압은 측정이 안되거나 90/60mmHg으로 낮게 측정되었으며, 맥박수는 129회/분으로 증가된 상태였다. A는 급히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하였으나 상급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16:40경 산모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7.6g/dL였으며, 수혈 준비 중이던 17:00경 혈압측정이 안 되고 17:10경 자가호흡이 멈추는 등 심폐정지 상태에 빠졌고, 다음날 02:43경 사망했다.

대법원은 A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하였다. 우선, 전원이 지체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A가 간호사들에게 진료보조행위에 해당하는 자궁의 수축상태 및 질출혈의 정도를 관찰하도록 위임한 것 자체는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태반조기박리 등으로 인한 대량출혈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예견하였거나 예견할 수 있었으므로 평소보다 더 주의 깊게 감독하여 산모의 출혈량이 많은 경우 신속히 수혈을 하거나 수혈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시킬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전원 과정에서의 설명의무 위반의 과실 역시 인정하였다. A는 15:15경 전원조치에 앞서 전원받은 상급병원 의사에게 “조기태반박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는데 현재는 아무 이상이 없으나, 혹시 수혈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후송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전원 당시 ‘오후 3시경부터 출혈경향이 있고, 90/60mmHg정도의 저혈압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하였을 뿐 피해자가 고혈압환자이고, 수술 후 대량출혈이 있었다는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설명의무 해태로 인해 산모의 저혈압 및 출혈량에 대한 평가를 잘못하고 수혈의 긴급성 판단을 그르쳤다고 본 것이다.

판시에 따르면 응급환자를 전원하는 의사는 전원받는 병원 의료진이 적시에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환자의 주요 증상 및 징후, 시행한 검사의 결과 및 기초진단명, 시행한 응급처치의 내용 및 응급처치 전후의 환자상태, 전원의 이유, 필요한 응급검사 및 응급처치, 긴급성의 정도 등을 전원받는 의료진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A의 경우, 정상 혈압 환자는 통상적인 출혈만으로 90/60mmHg의 저혈압이 되기도 하지만 고혈압환자가 제왕절개 수술 후 같은 정도의 저혈압이 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경우로, 대량출혈을 의심할 수 있는데, 전원 받는 쪽에서 환자의 위급성을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에 있는 의료진에게 설명할 때에도 상황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법원이 전원 보내는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빠짐없이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전원 받는 의사는 전원 보내는 의사가 제공하여야 하는 정보를 꼼꼼히 물어보고 확인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일까?

수도권 병원의 사례이다. 21세 환자가 02:00경 복부에 자상을 입고 02:34경 B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당시 혈압은 90/60mmHg, 맥박 89회/분, 호흡수 26회/분, 동공반사는 정상이었고 복부출혈과 소장이 외부로 돌출된 것이 관찰되었다. 당직의는 하트만 용액 2L를 최대속도로 주입하고 심전도모니터를 실시하며 돌출된 창자를 소독하여 체내에 넣고 거즈로 덮은 후 반창고로 밀봉하였고, 02:50경 일반외과 과장에게 전화하여 중환자실에 빈병상이 있으면 곧바로 응급수술 준비를 하고 빈병상이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직의는 중환자실에 빈병상이 없어 전원을 결정한 후, 주위 6개의 응급의료센터 등에 전원을 문의하였으나 위 병원들 모두 중환자실에 빈병상이 없어 전원 받지 못했다.

03:15경 당직의는 C병원의 일반외과 과장에게 전화하여 ‘복부자상환자가 내원하였는데 중환자실에 빈 병상이 없어 수술을 할 수 없으니 전원을 요청한다’고 하였고, C병원의 일반외과 과장이 ‘C병원은 응급의료지정병원이 아니어서 응급수술팀이 상주하지 않고 보유 중인 혈액도 없으며, 자신도 집에 있어 수술이 급하거나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수술이 곤란한데, 전원할 환자의 상태는 어떠한가’라고 묻자, ‘현재 생체징후나 혈색소 수치상 이상이 없고 특별한 출혈소견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다. C병원의 일반외과 과장은 출혈이 심하지 않고 상태가 안정된 환자라면 전원하라고 대답하였고, 마취과나 수술팀에게 연락하여 수술 준비를 지시하였다. 당직의는 03:20경 앰뷸런스에 동승하여 환자를 전원시켰는데 당시 환자는 혈압 160/100mmHg, 맥박 90회/분, 호흡수 20회/분으로 환자의 혈압과 맥박은 정상수준이었다. 03:25경 C병원에 도착 당시 환자는 혈압 100/60mmHg, 맥박 117회/분으로 출혈성 쇼크 2기 상태였다. 그러나 03:50경 혈압이 90/60mmHg로 악화되었으며 04:30경 C병원 일반외과 과장이 도착하여 04:40경 기관 내 삽관을 실시하였으나 다음날인 13:40경 사망하였다.

1심은 B병원 당직의가 전원 당시 응급개복술이 필요한 환자라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응급수술이 지연된 것이 환자 사망에 기여하였다고 판단하였고, C병원에게는 일반외과 과장이 B병원 당직의의 대답 이외에 달리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하여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런데 2심의 판단은 달랐다. B병원 당직의에 대한 판단은 동일한 결론이었지만, C병원 일반외과 과장에게도 과실을 인정하였다. 임상적 경험이나 의학적 지식이 더 많은 일반외과 과장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정확한 상태에 대해 확인하지 않고, 환자가 안정적이라는 B병원 당직의의 말만 믿고 전원하게 한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2심의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C병원 일반외과 과장의 경우 C병원이 응급개복술을 실시할 능력이 없어 수술이 급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수술이 곤란하다면서 환자의 상태와 출혈여부를 물었으므로, 이러한 질문의 경위는 결국 망인이 즉시 응급개복술이 필요한 환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를 제공하여 달라는 취지로 보이고, 이에 대해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B병원 당직의가 특별한 출혈 소견이 없고 수술이 급한 것 같지도 않다고 답변하였다면 이러한 정보만으로 전원 허용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내원 당시의 상태, 시행한 조치, 수액투여로 인하여 생체징후가 정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추가적 질문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더 확인하고 나서 전원을 허용해야 할 의무까지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종합해보면, 환자를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전원 시키는 병원 쪽에서 구체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먼저 알릴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하면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전원 받는 의사로서는 해당 병원의 상황에 맞게 질의하되 이러한 전원의사의 진술을 신뢰하고 전원 허용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해당 의사의 진술이 사실인지 여부를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여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은 책임까지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은 공동진료하는 의료진의 의료행위를 신뢰하면 되지 혹시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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