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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병원 내 성추행,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처해야
조건미 세브란스병원 법무팀 변호사
2018년 03월 26일 (월) 11:01:32 병원신문 webmaster@khanews.com
   
▲ 조건미 변호사
하루가 멀다하고 성폭력 사례들이 공유되고 있다. 봇물 터지듯 묵은 일들이 폭로되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병원이라고 해서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오히려 병원은 직무의 특성과 엄격한 위계질서로 인해 성폭력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여지도 다분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최고조에 이른 이 때에 참고할 만한 판례가 있어 소개한다.

수도권 병원에서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오후 7시경 주점에서 회식을 하던 중 선배 전공의 A는 1년 후배 전공의 B가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틈에 자신의 얼굴을 A의 얼굴에 가까이 들이대고 “얘는 왜 이렇게 취했냐?”라고 말하면서 양손으로 지압하는 형식으로 손가락 전체로 B의 머리를 만졌다. A는 회식이 끝나고 위 주점에서 나와 길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걸어가던 중에도 “이렇게 안는 것도 안 돼?”라고 말하며 뒤에서 양손으로 B를 껴안았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A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날 23:19경 B의 숙소에 침입하기에 이르렀다. 여성 전공의 숙소에서 잠들어 있던 B는 A가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에서 깨어 방을 나가려고 했으나 A는 B의 어깨를 잡고 나가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아섰다. 다행하게도 사건은 여기서 끝났던 것 같지만 사실 A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고, 이전에도 B의 가슴을 만진 전력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B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B가 주점에서 회식을 하던중에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A가 그의 얼굴을 B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양손으로 지압하는 형식으로 손가락 전체로 머리를 만졌다고 진술하였고, 당시 위 주점에 함께 있었던 동료도 A가 양손의 손가락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머리를 지압하는 식으로 눌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A는 B와 전공의 1년 선후배 관계이고, 당시 위 회식에는 동료 전공의들이 함께 있었으며, 그 장소도 공개된 곳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점에서의 추행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검사는 이러한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2심 재판부는 1심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A와 B가 이후로도 6개월간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사이였고, A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피해자의 가슴을 만진 전력이 있었으며, 이 사건 발생 당시 B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취한 것처럼 엎드려 있었는데, A는 B가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얼굴을 피해자의 얼굴에 가까이 들이댄 다음 양손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만졌던 점, A의 위와 같은 행동을 목격한 다른 전공의들은 “야 이거 그냥 동영상 찍을까, 왜 이래?”, “너희들 그러다가 뽀뽀하는 거 아니야?”와 같은 반응을 보였던 점, A는 그 후 피해자를 뒤에서 양손으로 껴안아 추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야심한 시각에 여성 전공의 숙소에 침입해 피해자를 폭행하기까지 하였던 점, A 역시 2심에 이르러서는 피해자를 추행할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행위가 ‘추행’에 해당함은 물론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A가 전공의 간의 위계질서를 악용하여 후배 전공의를 성추행하고, 야심한 시각에 여성 전공의 숙소에 침입하기까지 하여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았고, 원심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인하여 B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며 증언까지 하여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여야 하는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A가 B와 합의하지 않았고, 피해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A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인정하였다. 다만 A가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하며 반성하고 있고 아무런 전과가 없는 초범이며, 향후 성폭력범으로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불이익을 받게 된 것, 그 밖에 A의 연령, 범행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감안하여 벌금 300만원, 24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주위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어쩌면 젊은이들끼리의 상열지사로 치부하거나, 겨우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냐며 피해자인 B를 과민반응이나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렸을 수도 있다. 물론 1심의 판단처럼 분명히 머리를 지압하듯이 만진 행위만 놓고 보면 판단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추행행위의 맥락이 중요하다. ‘추행’은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이에 해당하는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 간 이전부터의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 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해당 사안에서는 A가 전공의 선배라는 우월적 지위에서 B의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행위를 했고, 머리를 만질 당시 주위에서도 이러한 행동이 추행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지하였으며, 이후에도 B를 뒤에서 껴안고, 급기야 당일 밤에 숙소에 침입까지 했던 사실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에 강제추행죄가 인정된 것이다. 피해자 B의 입장에서도 보더라도 A의 일련의 행동들이 아니었다면 머리를 만진 행위만으로 고소하거나 끝까지 합의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 사례와 최근 일련의 미투 운동은 우리의 감수성이 좀 더 예민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간 우리는 참 둔감했다.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 스스로도 사실 약간은 사소한 접촉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B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사실을 공론화하거나 문제삼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가더라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사건이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A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고, 피해자인 B에게는 잊을 수 없는 괴로운 순간들을 감내해야 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련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관행으로 치부되어 왔었던 일들, 회식자리의 분위기를 위해 묵과해왔던 행동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남녀 사이에 그 정도는 있을법한 일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 등이 실은 당사자에게는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될 수 있는 행위임을 보다 예민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병원은 수직적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간이다. 병원 종사자로서 누구나 피해자의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으며,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위치에서건 이제는 의식의 전환을 통한 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판단과 대처가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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