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인증제와 의료 질 평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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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인증제와 의료 질 평가 <1>
  • 병원신문
  • 승인 2018.03.0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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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
▲ 구홍모 본부장
'의료법' 제58조에 따른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병원급 의료기관에 행하는 인증’은 과연 필요한 것일까?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의료기관 평가 및 인증제도 역사를 먼저 되짚어보자.

2008년 1월, 국정과제의 하나로 ‘의료기관 평가제도 선진화’가 채택되었고, 그 실천과제로 ‘의료기관 인증제 도입’과 ‘인증전담기관 설립’이 추진되었다. 그 후 2010년 7월 23일, '의료법'이 개정되어 인증전담기관을 둘 수 있게 되었고, 같은 해 10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출범하게 되었다. 인증전담기관은 인증신청의 접수, 인증기준의 충족여부 평가, 평가결과와 인증등급의 통보, 조건부인증을 받은 의료기관에 대한 재인증, 이의신청의 접수 및 처리 결과의 통보, 인증서 교부, 인증기준, 인증 유효기간 및 평가결과의 공표 등 의료기관 인증 전반에 대한 업무와 다른 법률에 따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를 통합하는 업무를 위탁받았다.

그 이전 과거로 돌아가 보면, 2004년부터 '의료법'에 따라 300병상 이상 병원에 대해 ‘의료기관 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당시 ‘의료기관 평가제도’는 과잉경쟁에 따른 과잉투자, 일시적이고 수동적인 의료 질 향상 노력, 평가기준의 적정성 논란 및 평가위원의 전문성 및 객관성 부족 등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그로 인해 ‘의료기관 평가제도’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보다 더 이전 과거로 돌아가 보면, 국내 의료기관 평가는 1919년부터 의료기관 평가를 시행한 미국보다 44년 뒤인 1963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보건사회부가 시행한 ‘수련병원 지정 심사’이다. 정부 주도로 시작됐지만 예산 확보 문제로 2년 만인 1965년 주체가 대한병원협회로 바뀌었다.

1980년 대한병원협회는 의료기관 평가를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수련병원 지정 심사’를 포함하는 ‘병원 표준화 심사’라는 새로운 평가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 시행과 함께 의료의 공급과 수요가 증가하자 병원의 윤리성을 높이고, 환자의 적정진료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병원의 진료윤리, 시설 및 장비, 진료통계 등이 평가 대상이었으며, 기존의 ‘수련병원 지정 심사’의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는 표준화 심사만 시행하는 경우 병원에 돌아오는 이익, 즉 인센티브의 부재에 따른 반발을 예상한 것이었다.

초기의 ‘병원 표준화 심사’는 이전에 시행했던 ‘수련병원 지정 심사’에 비해 밀도 있게 병원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미국의 심사 항목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조사 내용이 우리나라 병원 현황에 다소 맞지 않았다. 대한병원협회는 이런 한계점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병원합동신임위원회의 병원조사표에 기초를 두고 여러 차례 보완 및 수정을 거쳐 2000년 병원 표준화 심사 요강을 개정했다. 이어 2003년에는 명칭을 '병원신임평가'로 바꾸었다. 이후 2016년 12월 23일부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관련 고시에 따라 대한병원협회에서 ‘수련환경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병원 표준화 심사’의 경우, 독립된 기구가 아닌 대한병원협회가 담당한다는 점에서 평가의 객관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생겼다. 이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1994년 의료보장개혁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듬해부터 ‘의료기관평가제’가 실시되었다. 그 후 2002년 '의료법' 개정을 통한 의료기관 평가 관련 조항을 신설하여 2004년부터 ‘의료기관 평가제도’가 시행되었다. ‘의료기관 평가제도’는 병원의 시설, 장비, 인력, 진료과정 등을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예산으로 전담기구 없이 의료기관을 평가하다 보니 의료 수준의 평가보다는 의료기관의 시설 등 구조적인 측면을 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또 300병상 이상의 병원이 의무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의료계 반발이 계속 일었다.

이와 관련하여 ‘의료기관 평가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첫째, 현행 ‘의료기관 평가제도’는 의료의 질 향상 또는 환자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의료기관 평가제도 실시 이후 환자중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의료기관의 자율적 개선 노력이 가시화되고 결과분석을 통해 관련 정책이 개발되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10여개 부문별 등급화 결과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인해 평가결과에 대해 병원간의 순위경쟁이 치열하여 평가기간에 과도한 경쟁 및 의료자원의 과잉 투자를 초래하였다. 또한 평가를 잘 받기 위하여 잠시만 잘하고 평가가 끝나면 다시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가는 ‘눈가리고 아웅식’이라는 지적이 있으며, 평가결과가 다른 제도와 연계되어 인센티브 및 디스인센티브를 위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지 않다.

둘째, 평가기구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여러 평가 주체가 각각 업무를 분담하여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의 협조와 안정적 운영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현재와 같은 비상임 평가위원 위주로는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보장되기 어렵고, 상임 평가위원을 늘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평가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적절한 시설 및 인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300병상 이하 병원들이 평가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넷째, 병원신임평가, 요양급여적정성평가, 암전문의료기관평가, 암검진의료기관평가, 지역거점공공병원운영평가, 응급의료기관평가, 치과의료기관평가, 한방의료기관평가 등 다른 의료기관 평가제도와 중복되어 평가대상 의료기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09년 6월, ‘의료기관 평가제도’를 ‘의료기관 인증제도’로 전환해 자율적으로 의료기관이 참여하도록 했다. 의료기관 인증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증평가 전담 기관인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을 설립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환자안전, 의료기관의 인력관리 및 운영, 환자의 만족도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인증기준을 구성하여 2010년 전국 12개 병원을 대상으로 시범조사를 실시하였다.

국내의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의료법' 제58조에 따라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인증’을 하는 것으로, 급성기병원(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및 병원)은 자율적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은 의무적으로 인증을 신청하여야 한다. 자율인증과 의무인증 모두 4년 주기이며, 매년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중간자체조사를 시행하고, 인증 후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중간현장조사를 시행함으로써 의료기관의 지속적인 질 관리를 유도하고 있다(표 참조).

‘의료기관 인증제도’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 의료진 중심의 의료문화에서 환자와 보호자 중심의 의료문화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2012년 국제의료질향상학회(ISQua)의 인증을 받아 국제적인 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병원 평가인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l)도 ISQua의 인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1917년 미국외과학회에서 병원 표준화 프로그램을 수립한 후 1951년 병원인증독립기구인 Joint Commission on Accreditation of Hospital을 조직한 것이 시초이며, 미국을 시작으로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세계 주요 국가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및 인증을 담당하는 정부 혹은 민간기구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미국의 The Joint Commission(TJC), 호주의 Australian Council on Healthcare Standards(ACHS), 캐나다의 Accreditation Canada(A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구들은 환자안전 보장 및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 하에 운영되고 있으며, 의료기관 인증이 의료기관의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하여, 질 높은 의료와 안전한 의료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이전 ‘의료기관 평가제도’의 문제점을 다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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