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병원 화재, 피해와 책임 줄이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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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병원 화재, 피해와 책임 줄이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 병원신문
  • 승인 2018.02.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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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미 세브란스병원 법무팀 변호사
▲ 조건미 변호사
최근 병원에서 화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일반 다중이용시설과 달리 몸이 불편하거고 아픈 환자들이 입원해 있어 화재는 다른 시설보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화재라도 시설기준의 준수 여부와 대처 수준에 따라 그에 따른 피해 정도는 천지 차이다.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약 우리 병원에서 화재가 나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은 어떻게 될까.

유명한 사례가 있다. 지방 한 요양병원에서의 일이다. 자정 즈음 입원 환자 한명이 다용도실에 들어갔다. 몇 분 후 다용도실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소방대원이 도착했으며, 삼십여분 만에 진화했다. 그러나 이 화재로 20명의 환자와 소화기를 들고 자체 진화를 시도하던 간호조무사 1명도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방화를 저지른 치매 노인은 치매로 인한 심신상실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 재판 중 지병으로 숨졌다. 방화는 인명피해로 직결되는 위험한 범죄다. 이러한 방화범죄의 성격을 고려하여 형법은 방화에 대해 살인죄와 비슷한 형을 부과하고 있다. 더욱이 해당 사건에서는 21명이 사망하였다는 점에서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 병원에는 어떠한 책임을 물었을까? 대법원은 요양병원의 이사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을 인정하였다. 이사장 측에서는 개정된 소방시설법에서 정하고 있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를 개정 전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들어 다투었지만 이는 인정되지 않았다. 비록 소방시설법 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의무가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설치할 주의의무는 일반적인 업무상 주의의무이므로 스프링클러 등의 소방시설을 설치하여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요양병원의 경우 인지력이 떨어지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수용하는 병동으로 일반 병원보다 재난 발생 시에 환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물적, 인적 시설을 더 갖출 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야간 화재 발생 등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적 설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스프링클러 등 물적 설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으면 화재 발생 시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예견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행정원장과 관리과장은 항소심에서 각 징역, 금고형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형사처벌에서 끝나지 않았다.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랐다. 재판부는 병원에서 당직자를 충분히 배치하지 않고 소방계획을 수립하거나 화재예방교육 등을 하지 않았다는 점, 환자들의 라이터 반입 행위를 철저히 점검하지 않았던 점, 병실 벽을 설계도면과 달리 시공한 점 등을 근거로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방화로 화재가 발생한 점, 야간 당직자인 간호조무사가 진화 중 사망한 점, 불이 조기에 진화된 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어 위자료 산정에 반영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 당국은 사건 이후 신설되는 요양병원들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아직 유예기간 적용 중이지만 설치를 마친 곳은 약 60% 정도로 알려졌다. 스프링클러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영상 판단이 고려되는 문제겠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민감한 사회적 여론뿐만 아니라, 추후 발생 가능한 피해 감소와 그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경감하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조기에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이라면 임대차 관계도 고려하여야 한다. 요즘은 병원 내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병원과 해당 편의시설의 운영주체는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A병원에서 B업체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가정해보자. B업체는 호떡집을 운영하였는데 호떡을 만들던 중 불이 났다. 불은 병원 전체로 번져 병원이 다 타버렸다. 이 경우 병원은 B업체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불타버린 호떡집에 대해서는 비교적 손쉽게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임차인이 목적물을 반환하지 못하게 된 경우 임차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인한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고, 화재 등 구체적인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아니한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하였다. B업체에게 입증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불이 난 것이 병원이 관리하는 전열기구의 하자로 인한 것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병원은 임대인으로서 하자를 보수하여 B업체가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B업체가 미리 이러한 하자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병원이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호떡집에서 불이 나서 나머지 병원이 타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종래 대법원은 호떡집과 병원이 구조상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관계에 있다면 B업체가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나머지 건물 부분이 소훼되어 병원이 입은 손해도 B업체가 배상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이 달라졌다. 변경된 판례에 따르면 호떡집과 병원이 구조상 불가분의 일체라고 하더라도 나머지 건물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하려면 병원측에서 B업체의 보존‧관리의무 위반 사실, 의무위반과 나머지 건물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B업체가 해당 건물이 관리의무로 소훼(燒燬)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야 한다. 원래 임차인에게 부여하던 입증책임을 임대인에게 전환한 것이다.

병원 입장에서 반길만한 판결은 아니다.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같은 억울한 피해를 막으려면 최대한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시설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 호떡집에서 난 불이 호떡집에서 끝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의원이나 작은 규모의 병원인 경우 무인경비업체에게만 관리를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럼 의원이 진료가 끝난 밤중에 불이 난 경우 무인경비업체에게 손해배상을 물을 수는 없을까.

서울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의 사례이다. 밤 11시경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상당한 액수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 경비업체는 화재 발생 6분 전 정전신호를 접수하였으나 내부배터리로 일정 시간 경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50여분이 지난 11시 40분경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병원 내부는 전부 타버리고 소방관과 경찰관이 화재를 진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원측에서는 경비업체가 50분이나 늦게 출동하였고, 소방관이나 경찰관 등이 병원에 출입하였음에도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며, 경비업체에서 화재 방지를 위해서는 별도의 부가서비스에 가입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경비업체의 손해배상책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하여 경비기기가 소훼되어 정상작동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소방관들의 출입사실을 알고 출동하였더라도 이미 화재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었을 것이며, 경비업체의 미출동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도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경비계약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아 착오에 빠졌다고 해도 이를 경비업체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안타깝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병원이 손해인 것이 명백하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화재보험에 가입하여 위험을 분산하겠지만, 무엇보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하겠다. 앞서 살핀 것처럼 시설기준, 소방계획 및 화재예방교육 등 기본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예방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발생 시 손해배상책임도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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