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 정부의 의료정책과 지방의료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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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새 정부의 의료정책과 지방의료원의 미래
  • 한봉규 기자
  • 승인 2018.02.02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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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의료원장 조승연
진주의료원 폐원 후 벌써 5년, 이제는 도청사로 리모델링되어 다시 병원의 모습을 찾긴 어려워진 것 같다. 일제침탈과 전란의 폐허위에 세운 한강의 기적으로 찬사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공공복지부문에서는 선진국 중 가장 하위권임은 잘 알려져 있다.

보육, 주택, 의료 등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공공복지가 민간중심의 시장경제시스템에 주도권을 내어 준 대가가 각 부문에 걸쳐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2017년, 새 정부가 출발하였다. 공공의료에 큰 관심을 가진 새 정부에 많은 기대를 보내며 이번 기고 내용을 통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역거점공공병원으로서 지방의료원의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문제점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단기간에 의료보장을 이루는 데 성공했으나 재정기반의 국가의료제도와 달리 사회보험으로서 소득수준에 따른 보험료부담을 누진적으로 반영하는데 한계를 가지며, 결정적으로 정부의 보건의료 재정투입을 최소화할 명분을 주었다.

7,80년대 고도성장시기를 거치며 복지분야조차 국가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중심 정책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기조에 편승해온 바 있다. 최근까지도 보건의료부문에 정부의 투자는 미미해서 세계에서 드물게 비대해진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중심의 영리적 의료시스템이 국가의료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이윤추구에 소홀했던 병원들은 퇴출위기에 몰리고 필수진료과목분야는 지원자를 찾기 힘들어졌으며, 대형병원이 외래환자유치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저수가로 이유로 실손보험에 기대어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것이 생존의 방편이 된 의원, 밀려드는 외래환자를 보느라 입원환자를 수련, 전공의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의과대학교수들을 보기도 답답하지만, 이토록 싼 수가임에도 낮은 보장성으로 생기는 재난적 의료비가 가계를 파탄에 빠뜨리고 많은 이의 생명을 포기시키는 주범이 됨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례없이 빠른 노동인구감소, 고령화와 맞물려 발생하는 국민의료비의 폭발적 증가는 진료량과 수익이 정비례하는 행위별수가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지난 정부의 공공보건의료정책

지난 몇몇 정부들도 의료공공성 회복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다양한 정책을 펴왔다. 공공의료강화를 본격적으로 천명한 참여정부는 2003년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지역거점병원육성 등을 골자로 하는 "공공보건의료확충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5년간 총 4조 3천억 원을 투입하고 공공병원을 전체의 30% 까지 확충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였다.

재정조달계획의 부족함과 이어진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이 계획이 실현되지는 못하였지만 큰 방향에서 공공의료 강화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였고, 이 중 지방의료원 주관부처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기능보강사업에 예산을 집행함으로써 수십 년 간 방치해 낡을 대로 낡은 지방의료원이 다소나마 시설을 개보수하고 기능을 보강할 수 있었다.

박근혜정부도 2013년 집권과 동시에 발생한 진주의료원 폐원이라는 사태를 수습함에 있어 여야 합의에 기초하여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방의료원 육성을 통한 공공의료강화대책"을 마련하였고 이에는 원장의 책임강화, 미충족의료 해소를 위해 지방의료원을 특화해 나감, 지방의료원의 평가와 예산자원 연계를 강화, 이를 위한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설립 등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그러나 민간의료기관이 하지 않는 적자분야나 미충족 의료를 보완하는 부분을 공공병원의 역할로 제한함으로써 공공의료를 국가의료의 중심에 두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가 빠져있었다.

또한 당시 추진되었던 영리병원, 원격의료, 부대사업허용 등 보건의료의 산업화 추세와 맞물려 의료공공성 회복을 위한 내용은 오히려 의료영리화를 위한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공공병원에서 공익적 적자를 정의하고 지원할 당위성을 확보하여 신포괄수가 인센티브,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 지속적인 기능보강사업 등을 통해 지방의료원의 만성 적자구조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정책적 실패를 거울삼아 좀 더 정교한 공공의료 강화정책을 공약으로 걸고 구체적 방안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지점을 원점에서 정리한 후 실현가능한 로드맵을 만들어 구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다음 세 가지 중요한 과제를 풀기위해 정책대안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전 국민 건강보험체제에서도 60% 초반에 불과한 낮은 보장성에 의해 발생하는 경제적 요인에 의한 미충족의료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적 의료비에 의한 가계파탄이 간과할 수준을 넘었다는 위기의식이다.

낮은 수가로 인한 의료기관의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용인되어온 비급여 진료의 확대와 실손의료보험의 공모에 위기의 근본이 있다고 본다. 이의 해소를 위해 단계적으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라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표현되는 의료기관간의 환자유치를 위한 무한 경쟁구조의 근본적 변화다.

환자고객의 선택에 의해 마음대로 의료기관을 결정하는 구조를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봤듯이 환자의 원칙 없는 자의적 의료이용결정권과 종별역할과 단계를 무시한 무분별한 의료기관 간 경쟁구조는 환자를 감염의 위험과 불필요한 과잉진료에 노출시키며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문제라고 인식한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직역의 이해를 조율중이다. 셋째, 절대적으로 낮은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식 자유시장주의 의료제도 하에 운용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에서도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기관수와 병상수 모두 1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대구적십자병원과 진주의료원 폐업을 마지막으로 다행히 진안군의료원이 설립되었고 영주적십자병원이 개원을 앞두고 있으며 성남시의료원이 건립 중이다.

또한 상당수 공익적 민간병원이 폐원하는 일이 연속적으로 생기고 있고 이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민간병원의 공익적 운영도 정부가 보장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지방의료원의 현실

현재 지방의료원은 총 34개이고 성남시의료원은 건립중이다. 대부분 일제치하에서 정부주도로 전국에 세운 46개에 이르는 자혜의원으로부터 출발하여 해방 후 도립병원이 되었고 이후 지방공사 형태를 거쳐 2005년 이후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한 보건복지부 산하의 특수의료법인으로 전환된다.

근현대의료가 도입 된 이후 국가의료의 중심에 있었던 공공병원은 대부분 지역거점병원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1980년대 까지도 민간병원과 질적, 양적으로 경쟁할 만 하였다. 이 후 건강보험 확산과 더불어 거대자본의 의료시장 진출로 민간의료부문은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정부의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축소했으며 그 결과 많은 공공병원이 폐원되었고 그나마 남은 지방의료원들 마저 낙후된 시설장비, 저소득층 중심 진료에 따른 만성적자, 상대적으로 낮은 직원 처우 등으로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들 마저 기피하는 하급의료기관으로 인식되어 왔다.

도시외곽의 싼 땅으로 이전하여 외래환자가 줄었어도 이로 인한 경영악화 책임은 무능력한 원장과 이기적인 직원들 탓을 돌려졌고 공공병원을 닫아야 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역거점병원과 지방의료원의 미래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지역 간 의료격차를 줄여 건강형평성을 높이고,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는 기초로서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있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제 역할을 하는 지역거점병원이 있어야 한다.

지역거점병원이란 중진료권(시군구보다 넓고, 시도보다는 좁은 범위)의 인구집단에 필요한 이차수준의 급성기, 아급성기, 회복기 의료서비스를 기획, 연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의 책임의료기관을 말하며 "지역의 (공공)보건의료서비스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중심의료기관"이라는 의미이다.

재활, 노인요양병원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지만 높은 수준의 응급진료기능을 포함하고 2차 의료기관 최상급의 수준의 필수의료를 수행하기 위한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추고 지역여건에 따라 최소 300~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이 중심이 된다.

지역거점공공병원은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을 지칭하지만, 상당수가 열악한 여건으로 이 조건을 갖추지 못한 현실이다. 지방의료원이 지역거점공공병원으로서 새 정부 의료정책의 주요기반이 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행되어야 한다.

첫째, 지방의료원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정립하여야 한다. 방향을 상실한 채 단지 하나의 병원으로 존재하는 지방의료원이 아니라 지역거점공공병원으로서 정의에 부합하는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존재의 미션과 경영의 비전을 설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역할을 수행할 여건을 점검하고 보강하여야 한다. 부족한 인력과 시설은 보완계획을 세우고, 접근성이 떨어져 지역거점병원의 역할이 어려운 곳은 과감하게 좋은 위치로 이전하고 기존병원은 특수 또는 전문병원으로 전환하는 등 결단이 요구된다.

셋째, 진료권 의료현황 분석을 통해 의료취약지를 설정하고 부족한 곳에는 공공병원을 신설하거나 공익적 민간병원을 거점병원으로 지정하는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의료취약지는 단순히 의료기관 수나 병상수 개념이 아닌 지역 내 건강불평등을 파악한 기능적, 질적 분석을 통해 선정하여야한다.

공공병원을 원하는 지방정부가 향후 운영비 부담에 대한 우려로 설립을 포기하지 않도록 시설장비에 치중된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을 운영비지원이 가능하도록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지역거점공공병원은 지역 내 의료전달체계의 중심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기존의 민간의료기관과 경쟁하는 구도가 아니라 협력과 보완을 통해 지역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주민의 건강지킴이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지방의료원이 국가의료정책을 수행하는 중심 역할 뿐 아니라 해당지역의 공공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중심조직으로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필수진료분야 유지와 지역 미충족의료 해소를 위해 생기는 공익적 적자는 반드시 전액 지원하도록 한다. 지역거점공공병원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손익을 따지는 경영수지개념을 벗어나 본연의 임무수행을 평가하는 방식도입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예산방식을 행위별 수가제에서 총액예산제 기반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시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조율, 법률개정과 예산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다. 하지만 어려움 없는 혁신은 없다. 수십 년간 쌓인 문제를 풀고 공공의료를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중심에 두는 일에 앞장서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지방의료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우리 앞에 열린 소중한 정책의 창을 통해 대한민국 의료공공성 확대를 위한 혁신과 도약의 기회가 넘어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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