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새 정부의 정책기조 하에서 병원 경영의 한계와 사립대의료기관의 역할
상태바
[특집]새 정부의 정책기조 하에서 병원 경영의 한계와 사립대의료기관의 역할
  • 병원신문
  • 승인 2018.01.02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진 사립대의료원협의회장
▲ 임영진 회장
1. 들어가는 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의료공급자의 입장에서는 보건의료정책이 어떤 내용으로 언제 시행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의료기관의 기능적 분담을 확립하기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지역간 건강수준과 의료수준 차이 극복을 위한 지역거점병원 육성, 보건의료인력의 정규직화 등을 골자로 한 보건의료정책과 더불어 지난 8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문재인 케어’ 일명 ‘문 케어’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심대하다.

2. 건강보험보장성 강화의 개념과 의미

우리나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단일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진료비지불제도로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를 통해 의료서비스(행위, 약제, 치료재료)별로 정한 가격(수가)과 사용량을 반영하여 진료비를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수가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성/유효성/비용-효과성을 검토하여 수가로 인정할지를 결정한 후, 수가로 결정되면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인지(급여) 적용하지 않을 것인지(비급여)에 대해 결정을 하게 된다. 전체 의료서비스항목 중 건강보험 적용대상인 급여항목이 많을수록 ‘건강보험의 보장성(Health Insurance Coverage)’이 높다고 한다. 보장성 강화는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이를 통해 제한되었던 의료이용의 접근성을 개선시킴으로써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보장성 강화는 환자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반면 건강보험 재정의 추가투입이 필요하고 의료기관의 경영을 악화시킨다. 그동안 필수진료항목은 원가에 못미치는 수준에서 급여화 하고, 상대적 필요도가 적은 항목은 비급여로 인정하여 요양기관에서 경영수지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해왔다. 그러나 환자의 진료비부담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비급여 진료비를 폐지하려는 것에 대해 앞에서 말한 건강보험법상의 비급여 수가의 취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고 거기에 의료기관의 추가적인 희생까지 강요하면서 비급여 진료항목을 전면 급여화 하려는 것은 결국 요양기관의 생존을 위협하여 국민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도 있다.

3. 병원경영의 현실과 한계

우리나라의 의료기관들은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구조와 인건비 등 관리비용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인구절벽이라 불릴 만큼 출산율이 저하되고 그에 비해 노령인구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문 케어에 소요될 재원의 대부분은 이러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국민들이 부담하여 적립된 소중한 건강보험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OECD health data 2014를 통해 본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재원일수와 1인당 외래진료횟수는 OECD 평균의 두 배에 이르고, 국민의료비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하며 그 원인으로는 건강보험 적용으로 진료비에 대한 본인 부담이 낮으며,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 등으로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건강보험제도 하에 급여와 비급여 수가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환자부담을 줄이면서도 보험재정의 건전화를 이루어왔는데 비급여 진료비를 폐지하면 보험재정이 악화되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환자의 의료기관 이용을 적절하게 관리하거나 고액진료비가 발생하는 난치성 중증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방법 연구 및 신약개발 같은 보완책 없이 단순히 비급여 진료비를 억제하여 이용자 부담을 경감하는 방법은 의료이용의 증가로 이어져 보험자(건강보험공단)와 국가의 재정부담은 더 커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될수록 국민의료비 증가속도가 더욱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며, 예단(豫斷)컨대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결국은 건강보험 청구진료비를 삭감하거나 수가보상수준 인하를 통해 진료를 제한할 것이다. 이는 병원경영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의료질 저하까지 초래할 것이다.

4. 사립대의료기관의 역할과 제언

첫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여야 한다.

보건의료산업은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으로서 의료기관들의 경영이 악화되면 구조조정 및 조직축소를 하게 되어 일자리도 줄어들고 국민의료를 위한 의료공급을 제공하기 위해 추가적인 재정이 필요하게 된다.

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의 병협 대표위원과 전문가로 위촉되어 출범이후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노사협력과 고용안정을 원하지 않는 경영자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소요재원을 충당할 방안이 여의치 않기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의 정규화에 따른 소요예산은 공공기관과 동일하게 정부에서 반드시 지원되어야 하며, 수가보전방안으로는 정규직 비율에 따른 차등가산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전공의 수련환경개선과 지위향상은 환자안전이 담보되어야한다.

‘전공의 수련환경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이하 전공의특별법)’에서 유예되었던 주당 최대수련시간(80시간), 최대연속수련시간(36시간 초과금지), 최소휴식시간(10시간)이 12월23일부터 발효된다. 전공의수련환경평가 또한 평가항목에 전공의인터뷰가 포함되는 등 보다 엄격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전공의 수련환경이 개선되고 근무시간이 단축되기 위해서는 시설확충과 인력확보를 위한 비용지출이 불가피하다. 만약, 수련병원의 투자여력이 없거나 미약할 경우 시설미비나 인력부족으로 인하여 환자안전의 위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수전문의 양성은 미래 보건의료를 위한 사회적 책임이므로 의료공급자에게만 부담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셋째, 공공적 역할 수행에 대하여 충분히 보전되어야 한다.

지난 2015년 초유의 사태인 메르스(MERS)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은 국공립병원이 아닌 사립대의료기관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수습되고 손실보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축소되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후 사립대의료원협의회장으로서 ‘의료(또는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화두로 개최되는 토론회와 세미나, 포럼 등에 참여하게 되면 언제부터인가 ‘역할은 일률적, 지원은 차별적’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정부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수용한다 할지라도 ‘지원은 한시적, 비용은 영구적’이라는 표현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향후 국가적 사태로 인한 사립대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이 요구된다면 반드시 즉각적이고 충분한 보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넷째, 역사성과 우월성을 갖춘 의료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의료기관 중 최고 상위의 기관은 상급종합병원이다. 3년을 주기로 인력, 시설, 장비, 의료의 질 측면에서 우월성을 갖춘 종합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이 선정된다. 상종지정평가와 관련하여 각 권역에서 오랜 역사적 유래와 충분한 역할을 하면서 의료의 질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단 한 곳의 의료기관이라도 확대해달라고 반복적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지역간 균형발전과 수도권 편중해소라는 명분에 밀려 수용되지 않았다. 4주기에는 반드시 1~2개 기관이라도 확대되고, 평가기준 역시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변경돼 충분한 의료자원을 갖추고 양질의 의료를 제공해온 의료기관이 폄하되지 않기를 바란다.

5. 맺는 말

최근 모 대학 중증외상센터의 교수님이 가슴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풀어냈다. 대한민국의 의료가 지난 메르스 사태에 이어 중증외상치료와 같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병원들은 그간 살아남기 위해 수익성 편중의 진료형태로 성장해온 것이 현실이고 이로 인해 마이너(minor) 진료과목들이 축소되고 전공의를 충원하지 못해 운영의 어려움은 물론 진료과의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의료기관중 90%를 차지하는 사립대의료기관들의 국민건강에 대한 헌신적 노력으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수준의 의료의 질적 발전을 이루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올 수 있었다. 국민건강이라는 공동목표에 대해서도 사립대의료기관들은 정부시책에 협조하며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그간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4차 산업혁명은 거대한 물결이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하였지만 의료계와 복지부가 배제되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또한 의료계의 시련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물리적 행동이 표출되었으며 급기야 의정협의체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정부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신뢰프로세스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협의과정은 지난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산업환경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비가 필요하며,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합리적, 탄력적 대응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판단된다, 바야흐로, 진료는 협진(協診), 경영은 협업(協業), 정치는 협치(協治)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정부의 수가보상기전은 협진과 협업에 가중치를 부여하고 의료정책실행은 협업과 협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몇 년 전 대한병원협회의 ‘병원이 웃어야 국민이 행복하다’라는 슬로건을 다시 생각해본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라고 했지만 씁쓸한 웃음과 참담한 심정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현재 도래하고 있는 의료산업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당면한 의료정책 상황에 따른 암울함 때문일 것이다. 의·정간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의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2018년 새해에도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의 행복이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