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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환자안전관리체계 구축이 보건의료정책에 미치는 영향〈1〉
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
2017년 12월 11일 (월) 14:06:28 병원신문 webmaster@khanews.com
   
▲ 구홍모 본부장
원고를 청탁받은 후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 보건의료의 틀 속에서 행했던 내 역할들이 정말 난해하고 지루한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과정으로 이끌었다. 정해지고 구속된 교육 커리큘럼 과정을 통해 임상(굢床)과 진료(診괛)를 의료의 모든 것으로 인식했던 의사로서의 나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에 입사하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하 ‘인증원’)을 거치면서 알게 된 의료사고, 환자안전 및 의료질향상을 논하는 나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감이 존재했고, 이는 내 글의 방향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글은 임상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던 한 의사가 임상 외의 경험을 통해 느낀 바를 아직도 임상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듯이 편하고 솔직담백하게 적고자 한다. 의료기관이 환자를 안전하게 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설계된 의료기관인증제와 수많은 평가제도, 그리고 의료종사자의 불만. 빈크리스틴 항암제 투여오류로 인한 故정종현군의 사망으로 제정된 환자안전법과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불편한 시선. 현재 우리를 둘러싼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아는 바대로 읊조려보고자 한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과 그에 따른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1990년대 이후 보건의료분야에서는 지속적으로 의료개혁(Health reform 또는 Healthcare reform)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의료개혁에 따른 보건의료정책 확립을 중요한 정책과제로 선정·추진하여 안정적인 사회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추진 방향이 보건의료정책을 의료서비스의 재원조달과 의료제공체계 등에 대한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보건의료의 최종 가치인 건강수준의 향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의료서비스의 재원 조달과 의료제공체계의 효율적인 운영이 보건의료정책의 기본체계 구성에 있어서 중요 요소인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건강수준을 향상시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단순한 시장경제 논리로는 설명하기가 충분하지 않다. 그 이유는 건강수준의 향상이 의료서비스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종합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상기의 이유로 인해 현재까지 논의되었던 보건의료정책 추진 방향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즉 의료서비스 재원 조달과 의료제공체계의 운영방안이 건강수준 향상이라는 최종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의 추가 투입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건강수준 향상이라는 두 요소 사이에 연결고리가 필요하고, 이 연결고리는 건강수준의 향상을 이끄는 동시에 의료 자원의 절약을 통한 보건 관련 조세감면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거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이어야만 한다.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의 결과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의료행위의 결과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순결과가 아닌 악결과이다. 이 악결과를 환자안전사고 또는 의료사고(환자안전사고와 의료사고의 차이는 추후 설명)라고 본다면 이는 의료행위의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악결과의 발생은 환자에게 추가 의료비를 지출하게 하고, 가족 구성원은 개호(介護) 등의 참여로 사회생계적 손실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그 가정의 경제적 악결과를 유발한다. 이는 다툼, 민원, 소송 등으로 해당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에게 사과, 손해배상 등의 요구로 이어지고, 그 결과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재원을 소진하게 된다. 또한 과잉 진료 및 과다한 약제 사용 등으로 같은 악결과의 재발을 방지하는 동시에 소진된 재원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건강보험수가나 행정제재 등을 통한 수많은 규제를 양산하게 되고 다시 이를 피해가기 위한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의료행위가 가지는 특성으로 일정 비율에서 악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다면 위의 악순환 구조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강화되고 어느 순간 손을 댈 수 없는 복잡한 기전으로 발전해간다. 실효적인 환자안전사고 보고체계와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의료사고 피해구제체계, 불가항력적 악결과에 대한 보상체계,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예방관리체계의 구축을 중심 연결요소로 구성한다면 지금과 다른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관해서 지금부터 하나씩 고민하고 풀어보고자 한다.

1. 의료인과 의료행위

의료와 관련된 정책을 세우고자 할 때 의료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과 비의료인 각자의 의료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보건의료정책 방향 설정에서 항상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의료현실을 모른다고, 누군가는 정책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면서 서로의 면전에 날 세운 말을 앞세우는 것은 바로 의료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추후 설명할 환자안전사고 및 의료사고는 의료행위로 인한 결과적 산물로 볼 수 있는데, 위와 같이 한정하는 경우에는 의료인 이외 보건의료인의 행위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환자안전사고 및 의료사고를 논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안전사고 및 의료사고에 대한 조사 등에는 의료행위의 주체가 의료인이 아닌 보건의료인으로 범위를 확대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의료분쟁조정법”) 제2조제1호에서 의료사고를 ‘보건의료인이 환자에 대하여 실시하는 진단·검사·치료·의약품의 처방 및 조제 등의 행위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피해가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2조제3호에서 보건의료인을 ‘의료법에 따른 의료인·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에 관한법률’에 따른 의료기사,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응급구조사 및 ‘약사법’에 따른 약사·한약사로서 보건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의료행위의 주체를 의료인에서 보건의료인으로 확대해석하고 있다.

또한 2014년 12월28일 제정되어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6년 7월29일 시행된 환자안전법에서도 환자안전사고를 ‘보건의료기본법’ 제3조제3호의 보건의료인이 환자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환자안전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위해(危害)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고로 규정하고 있다. ‘보건의료기본법’에서 보건의료인을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자격·면허 등을 취득하거나 보건의료서비스에 종사하는 것이 허용된 자’로 규정하고 있고, 보건의료서비스를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하여 보건의료인이 행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어 넓은 의미에서의 의료행위는 모든 의료종사자의 직무상 행위를 총칭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법’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의료행위 중 간호사와 조산사의 의료행위를 제외한 진료업무를 의사에게 한정하고 있는 것은 진료행위야말로 오직 의사가 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의료행위라 함은 의사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생리상 위험을 초래할 염려가 있는 진료행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은 바로 ‘사고’와 ‘사건’에 대한 일간의 해석이다. 2012년 4월8일에 시행된 의료분쟁조정법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는 ‘불가항력 의료사고보상제도’나 ‘피신청인 동의절차’가 아닌 ‘의료사고’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건’보다 ‘사고’라는 말에 거부감을 일으킨다. ‘사고’라는 말에는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음을 전제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건의료인에게 ‘의료사고’는 두려운 단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건’이 아닌 ‘의료사고’로 명시된 의료분쟁조정법은 보건의료인으로 하여금 과실유무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책임을 져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고, 이로 인해 법 시행 초기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사고’는 사전적으로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Accident’를 의미하고,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의료사고’를 ‘보건의료인이 실시하는 의료행위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피해가 발생한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사고’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원인행위에 대하여 악결과가 발생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일 뿐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과실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논란은 ‘환자안전법’ 제정 전후 과정에서 다시금 불거졌다. ‘환자안전법’에 ‘환자안전사건’이 아닌 ‘환자안전사고’로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자안전사고’는 ‘보건의료인이 환자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환자안전에 위해(危害)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의료사고’와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서두에서 용어의 사전적·법률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은 어감(語感) 때문에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개 용어 때문에 전체를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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