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하위법령안 의료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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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하위법령안 의료계 우려
  • 병원신문
  • 승인 2017.05.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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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교수
▲ 허대석 교수
보라매병원 사건(1997년)과 김할머니 대법원판결 (2009년) 등으로 연명의료 문제는 의료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가 관심을 가지는 이슈가 되었다. 그 대책으로 2016년초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연명의료결정 및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하여 각각 제안되었던 다양한 법안들이 함께 심의되어 하나의 법으로 통과되었는데, 이 과정부터 문제를 내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국한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은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하게 이원화했기 때문이다.

진료현장에서는 말기와 임종기를 엄격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임종기는 안락사와 같은 논쟁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여 엄격한 기준으로 법안에서 다루고 있다. 이와 반대로, 호스피스-완화의료는 가능한 빠른 시기에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완만한 기준설정을 희망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이 하위법령인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해 보완되기를 기대했으나, 2017년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하위법령, 처벌규정, 관련 서식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악화되어 있다. 대표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환자, 가족, 의료진이 상의하여 연명의료를 결정해 오던 진료관행을 어렵게 하는 절차적 규제로 인하여,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오히려 조장하는 폐해가 우려된다.

연명의료결정법과 그 하위법령안은 가족과 대리인의 역할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는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 국내 의료 환경의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 의료에서의 의사결정모델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환자-가족-의료인 간의 공동의사결정 모델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또, 말기환자의 “사전돌봄계획”의 수립에 대리인을 지정하고 대리인이 그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임종기 돌봄 과정에서 환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함에 있어 필수적이다. 따라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환자가 원할 경우 대리인을 정하도록 허용하여야만 한다. 특히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 가족이 있으나 연락이나 논의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 대리인의 필요성은 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절대적이다.

둘째, 과도한 법정서식과 처벌규정은 의료진의 질적인 환자 돌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입법 취지와 반대로 의료인들의 임종기 판단을 지연시키고 연명의료가 조장되거나 지속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법률을 통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져 왔던 의료집착적 행위가 해소되기를 바란다면 처벌 조항의 불필요함과 과도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전문가의 해석없이도 누구라도 쉽게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개정,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담당의사의 자격 제한은 진료의 흐름을 왜곡할 것이다.

회생가능성이 없다는 의료적 판단은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이 하도록 합의되었다. 모법에서 담당의사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제2조), 하위법령에서는 전공의는 의료법에 근거한 의사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담당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담당의사의 자격으로 전공의를 배제한다면 오히려 적기에 환자를 위한 최선의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될 수 있고 이는 연명의료 유보 혹은 중단에 관한 환자의 결정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비윤리적인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에 직접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수 없는 경우, 참관인의 입회하에 녹취하여 기록하고 관리기관에 통보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곧 임종할 것 같으니, 인공호흡기를 원하는지?”  녹음기를 갖다 대고 진술을 받아 녹취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법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함이라는 취지를 벗어나 오히려 환자에게 일종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며 환자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이러한 절차는 폐지되고 의무기록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여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연명의료결정법은 미국, 유럽, 일본, 대만 등과 비교할 때 가장 보수적이다. 왜냐하면,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에 대하여는 논의할 수 없고, 임종기 환자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대만조차도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지 않고 있으나, 유독 한국만 이 두 시기를 구분하여 혼란을 자초하였다.

가장 큰 쟁점인 환자가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유럽국가나 일본은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하여 가족과 의료진이 상의하여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게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입법은 환자 본인이 문서로 작성하지 않을 경우 매우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조차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1990년 연방법으로 규정했으나, 진료현장에서 실행이 어려워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은 연명의료계획서로 대체하였으며, 이 서식은 환자 본인이 아니어도 가족이나 친지, 대리인이 서명할 수 있게 하였다. 한국의 현실은 대부분 가족들이 대리결정을 하고 있음에도, 환자 본인만 연명의료계획서를 서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매년 20만여명의 환자가 만성 질환으로 임종한다. 임종과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연명의료를 중단 혹은 유보할지는 큰 사회적 문제이다. 이 법안은 말기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이 편하게 돌아가시는 것을 돕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그런데, 입법취지와 반대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 또, 법안이 연명의료중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연명의료를 유보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가 연명의료결정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후속 법안으로 짧은 시간내에 보완하지 않으면, 진료현장에 큰 혼란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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