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의 인수·합병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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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의 인수·합병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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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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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
▲ 현두륜 변호사
1. 현행법상 의료법인간 합병이 가능한가?

‘M & A’는 합병(Merger)과 인수(Acquisitions)를 합친 말이다. 인수와 합병이라는 용어는 주로 영리법인(회사)에서 사용된다. 

‘인수’란 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지분)이나 자산을 취득하여 그 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하는 것을, ‘합병’이란 두 개 이상의 회사가 법률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하나의 회사로 합쳐지는 것을 말한다.

합병에는 ‘신설합병’(A, B 2개의 회사가 합병하여 새로운 C회사를 설립)과 ‘흡수합병’(A회사가 B회사를 흡수하고, B회사는 소멸)이 있다.

원래 회사가 소멸(해산)하기 위해서는 청산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합병의 경우에는 청산절차를 거치지 않고 회사가 소멸한다.

또한, 합병으로 인하여 소멸하는 회사의 모든 권리와 의무가 신설회사(C) 또는 존속회사(A)에 포괄적으로 이전되므로, 각 회사의 주주, 채권자, 거래상대방, 직원 등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회사간의 합병은 상법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야 한다.

그럼, 비영리법인의 경우에도 합병이 가능할까? 비영리법인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는 민법에는 비영리법인의 합병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에 따라 실무에서는 비영리법인의 경우에는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개별 법률에서 합병규정을 둔 경우에는 예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립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인이다.

사립학교법인의 경우에는 사립학교법 제36조 내지 제41조에서, 사회복지법인의 경우에는 사회복지사업법 제30조에서 합병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비영리법인이라고 하여 합병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합병 허용 여부는 결국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의료법인은 대표적인 비영리법인이다. 의료법은 의료법인에 관해서 설립 허가, 부대사업, 설립허가 취소 등에 관한 사항만을 규정하고, 그 외 나머지 사항은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의료법 제50조). 의료법과 민법에는 의료법인의 합병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현행법상 의료법인간의 합병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2. 의료법인 합병 허용을 둘러싼 찬반 논쟁

현행법상 의료법인간 합병은 불가능하지만,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합병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의료법인을 해산 및 청산하고, 그 자산을 주무 관청의 허가를 받아 다른 의료법인에 이전하는 것이다. 즉, A의료법인은 존속하고 B의료법인은 해산·청산하여 B법인의 사원과 자산을 포괄적으로 A법인에 이전시키거나(흡수합병), A법인과 B법인 둘다 해산·청산하여 새로운 C의료법인을 설립하는 방법(신설합병)을 취하면, 사실상 합병의 결과를 얻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해산 및 청산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위와 같은 우회방법을 거치지 않고 의료법인간 합병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국회에서도 의료법인간 합병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안은 번번이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합병에 대한 반대 논리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요지는 대체로 이렇다. 첫 째, 대자본에 의해 의료법인의 대형화되고 중소 의료법인이 대형 의료법인에 종속된다. 두 번째,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세 번째, 의료법인이 사고파는 대상이 되어 의료법인의 영리화가 촉진된다는 등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반대논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첫 번째, 중소 의료법인이 대형 의료법인에 종속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의료법인간의 합병을 허용하면, 대형 의료법인이 탄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료법인에는 지분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회사와 같이 지분 매수를 통한 경영권 취득이나 적대적 인수 합병은 불가능하다. 또한, 의료법인이 합병하려면 양측 의료법인의 이사 정수의 2/3 이상의 찬성과 주무 관청이 허가가 필요하다. 병원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중소형병원이 대형병원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이는 의료법인 병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도 과장되었다고 본다. 의료법인이 설립한 병원은 각자 개설된 지역에서 독립한 의료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따라서, 의료법인이 합병된다고 하여 갑자기 거대 병원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공급시장은 공급자가 매우 많고 다양하며 건강보험체계에 의한 강한 통제를 받기 때문에, 특정 의료법인이 합병을 통해서 시장의 지배력을 장악할 수 있는 구조가 결코 아니다. 합병을 통해 병원의 구조를 개선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장려할 일이다. 환자 쏠림 현상은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로서, 의료법인 합병과는 관련이 적다.

세 번째, 의료법인의 영리화가 촉진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서 의료법의 규제를 받는다. 의료법인이 합병된다고 하여 의료법인의 성격이 변하거나 의료법의 규제를 덜 받는 것은 아니다. 의료법인이 사고파는 대상이 된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의료법인에는 지분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의료법인을 사고 팔수는 없다. 한편, 현행법하에서도 의료법인의 경영자가 경영권을 타인에게 양도하고 그 대가를 사적으로 취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합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법인간의 합병이 허용되면, 위와 같은 음성적인 거래가 양성화되고 의료기관의 회계가 투명해질 수 있다. 또한, 합병 허용은 오히려 비의료인이나 영리자본의 의료계 진입을 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의료법인간 합병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경영곤란 상태에 있는 의료법인이 자산 매각 또는 경영권 양도의 방식으로 비의료인이나 영리자본에 넘어가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3. 의료법인 합병 허용의 필요성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에서 의료법인이 설립한 병원은 전체의 28%에 이른다. 그만큼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의료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은 중요하다. 한편, 의료법인의 의료이익률은 2009년 이후 2012년도까지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2년도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의료법인은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고, 설립자의 추가 출연이나 차입만 가능하다.

그런데, 경영악화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의료법인에 대한 추가 출연이나 외부 차입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의료법인간의 합병은 이러한 의료법인이 조기에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해산 및 청산절차를 거치지 아니하므로, 자산 가격 하락이나 경영 공백으로 인한 의료법인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종전 의료법인의 모든 채무 및 근로관계가 포괄적으로 신설 의료법인 또는 흡수 의료법인에 승계되므로 근로자, 채권자에게도 유리하다. 안정적이고 연속적인 진료가 가능하므로 지역 사회 이익에도 부합하다.

이것이 진정으로 의료법인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고 의료의 공공성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기관 개설자격이 있는 사회복지법인이나 사립학교법인에 대해서는 합병을 허용하면서, 의료법인의 경우에는 이를 부정하는 합리적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

반면, 합병을 반대하는 주장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논리가 과장되거나 근거가 미약하다. 오히려,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은 영리자본의 의료계 진입을 막고, 의료법인의 경영권 유상 양도를 둘러싼 음성적인 거래를 양성화하며, 의료법인의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에 채무초과상태의 의료법인이 법인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런데, 법인회생절차를 이용한 의료법인 중에는, 노조와 경영진, 인수의향자, 채권자들 사이에 마찰과 첨예한 갈등으로 매각절차가 지연되고 결국은 정상화에 실패해서 파산의 길로 치닫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합병이 허용되었다면 법인회생을 신청하기 전에 합병을 통한 구조개선 및 정상 운영이 가능하였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료법인의 합병 허용 여부에 관한 진지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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