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계 환자안전 전담인력 확보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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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계 환자안전 전담인력 확보 '몸살'
  • 최관식 기자
  • 승인 2016.10.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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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관리 간호사 양성 준비기간 부족
실제 가동병상수 기준 인력 산정 요구
감염관리 전담간호사 양성을 위한 준비기간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전무한 가운데 지난 7월29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 9월29일 현재 시행 2개월을 맞은 환자안전법.

법의 규정에 따라 200병상 이상인 병원급 의료기관과 100∼5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은 1명 이상의 전담인력을,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은 2명 이상의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원내에 환자안전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환자안전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각급 병원들은 비용이 더 들고 수익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전혀 이견을 갖고 있지 않다. ‘환자안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환자안전 전담인력 확보다.

환자안전법 시행 이후 병원계에서는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간호사가 현재보다 1천30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계한 바 있다.

상급종합병원과 공공의료기관, 대도시에 소재한 종합병원 등을 제외하고 지방에 소재하거나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은 가뜩이나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안전법 시행으로 인력 운용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전담간호사 인력산정이 허가병상을 기준으로 책정돼 있어 실제로 병상가동률이 60∼70% 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이 또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계는 실제 가동병상수를 기준으로 인력을 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지방에서 중소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모 병원장은 “당장 병동에 투입할 간호사 1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별도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며 “환자 안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법을 준수할 수 있는 인력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에 들어간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력 문제 외에도 환자안전법 시행이 기존의 의료기관 인증평가 항목과 상당부분 겹쳐 환자안전이라는 목적 달성보다 병원들의 행정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방 광역시 도심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의료기관 인증평가에서 환자안전과 관련된 항목을 별도로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안전법이 시행됐으니 향후 인증평가 항목에서 환자안전 관련 평가는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내 직원들의 반응은 ‘환자 봐야 할 시간에 인증 준비하느라 오히려 환자안전이 뒷전이 되는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직원 개개인에게도 보람이 생기는 일이라면 몰라도 힘은 힘대로 들고 예산과 행정력만 낭비하는 제도와 정책은 제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환자안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담인력 신고와 환자안전사고 보고학습시스템 운영을 맡고 있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구홍모 연구위원은 “2024년까지 발생 가능한 환자안전사고의 25%를 감소시키면 입원진료비 1조 2천245억원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된다”며 “환자안전 전담인력의 일자리 창출 및 대외 이미지 제고를 통한 외국인환자 유치 증대 등 환자안전법 시행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안전사고는 자율보고가 원칙이며 보고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처벌이 없다”며 “보고된 환자안전사고는 분석을 위한 내용 검증만 끝나면 보고자와 의료기관의 개인정보를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완전 삭제해 개인정보도 유출되지 않으며 환자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병원계 한 관계자는 “공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과 교감하고 소통해야 할 교사들이 과다한 행정업무에 시간을 빼앗겨 정작 학생 교육은 뒷전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들이 인증평가와 환자안전교육 등 서류만 뒤적이다 정작 환자를 소홀히 한다면 법 제정 취지에도 맞지 않을 것”이라며 병원들이 본래 임무인 환자 돌봄에 충실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는 공문을 한번 보내면 그걸로 끝이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비록 단순한 규제라 하더라도 그 공문 내용을 시행하기 위해 많은 의료인력이 투입돼야 하는 실상을 감안하면 꼭 필요하지 않은 규제는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둘 필요가 있다고 이 관계자는 지적한다.

따라서 이 관계자는 환자안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분은 인증평가 항목에서 제외해 행정업무 부담이라도 줄여주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열 순경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규제의 망을 촘촘하게 만들어두더라도 이를 어기고자 한다면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당사자들이 보람을 느끼면서 자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현명한 정책 방향일 것이란 얘기다.

자율보고를 원칙으로 하는 환자안전법의 취지도 마찬가지다. 병원인들이 규정에 정해진 부분만 충족시키고 환자안전업무에 자발적인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법의 취지는 퇴색될 것이다.

중소병원은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서 굳건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허리가 약하면 아무리 똑똑한 머리와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더라도 거동조차 쉽지 않다.

병원인들은 중소병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정한 수가와 꼭 필요한 만큼의 규제,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의료인력이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환자안전법 제정 취지가 살아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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